주요국 내년 경기 암울..."수출·소비 꺾인 韓도 S공포 현실화"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를 쓰기에는 조금 지나친 것 같다. 다만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움이 지속될 것 같고, 물가도 지금보다는 수준이 낮겠지만 평년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에서 있고 경기는 조금 둔화되는 양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6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재부 기자실을 방문해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언론들의 평가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추 부총리의 위와 같은 상황 인식과는 다르게 국내외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각국의 동시다발적인 금리 인상과 신용경색은 모든 자산 시장을 흔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198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과 2008년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financial crisis)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SF 복합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형태의 위기가 복합된 전례없던 대형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다.
세계 경기는 이미 빠르게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올 들어 세계 경제 성장률은 두 분기 연속 하락하면서 지난 2분기 성장률이 잠재수준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경제연구소(NBER)의 판단 기준으로 본다면 ‘경기침체’다. 반면 미국, 유럽 등 세계 경제 주도국의 물가는 목표치인 2%를 4배 이상 여전히 웃돌고 있다.
한국경제가 복합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배경엔 미국 등 주요국의 경기침체와도 무관하지 않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미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해 6월 제시한 1.5%에서 0.5%로 낮추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는 앞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내년 미국 성장률 전망치인 1.0%보다 낮은 수준이다.
피치는 고질적 인플레이션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 때문에 미국 경제가 내년 봄부터 1990년대와 비슷한 완만한 경기침체로 끌려갈 것으로 내다봤다고 CNN은 전했다. 피치는 물가가 크게 올라 가계소득이 줄면서 소비지출이 내년 2분기에는 감소세로 돌아서리라 전망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發 경기침체도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국제통화기구(IMF)는 내년 유럽 대륙 성장률을 0.6%로 예상했다.
23일(현지시간) IMF는 "유럽 전망이 상당히 어두워졌다"며 "유럽의 인플레이션 상승은 진정될 태세를 갖추고 있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 여파는 전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설명했다.
터키와 우크라이나 등 분쟁 국가를 제외한 유럽의 성장률은 올해 3.2%, 내년에는 0.6%로 전망된다. 유럽의 인플레이션은 매우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다가 내년에 둔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의 인플레이션은 평균 6.2%, 유럽의 신흥경제국은 평균 11.8%를 각각 예상했다. IMF는 또 "유럽 전역에서 기술적 경기 침체는 더 심각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또한 내년을 기점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4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스태그플레이션 시대의 경제정책’ 세미나에서 이같은 목소리가 나왔다.
이날 발제를 맡은 조경엽 한경연 경제연구실장은 “미국 등 주요국은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고, 한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초입단계”라며 “향후 경제성장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조 실장에 따르면 미국은 9월 물가상승률이 8.3%로 2000년 이후 평균치(2.6%)를 상회하고 있으며, 1분기 경제성장률도 잠재성장률(2.1%) 대비 2.7%포인트 낮은 -0.6%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물가상승률이 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며,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잠재 GDP 간 괴리를 뜻하는 GDP 갭 역시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의 진입 단계라고 진단했다.
이어 발제한 이승석 한경연 부연구위원도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2023년을 기점으로 경기불황 국면에 본격 진입할 가능성이 확대됐다”고 밝혔다.
올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은 0.7%로 1%를 밑돌았으며,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도 2.9%에 그쳤다. 특히 그동안 성장을 견인해 온 순수출(수출에서 수입을 뺀 수치)의 성장기여도도 줄었다. 이 부연구위원은 “역대 최고 수준의 수출실적에도 불구하고 원유·에너지 가격 고공행진으로 수입이 더욱 크게 늘어나면서, 무역수지가 6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내년 1.9%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민간소비도 줄어들 것으로 봤다. 그는 “경기둔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과 실질소득 감소의 영향으로 올해 3.0%를 기록한 민간소비 증가율은 내년 2.5%로 줄어들 것”이라며 “복합적 위기의 인식 속에서 체감경기가 부진하고, 실물경제 위축의 가속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