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에서 이탈해 채권이나 예·적금 등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는 ‘역(逆) 머니무브’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금리 인상으로 증시가 장기간 변동성에 노출되면서 금리 혜택과 안정성이 담보되는 상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일 평균 거래대금은 7조586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달의 11조7538억원과 비교해 35.46%나 줄어든 규모다.
일 평균 코스피 거래대금은 올해 1월 11조2827억원으로 시작해 5월 9조5588억원, 6월 8조9091억원으로 매달 감소 추세를 기록 중이다.
코스닥시장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달 코스닥시장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5조303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10조9266억원) 대비 51.46% 급감하며 반토막났다.
올해 1월 9조3682억원이었던 코스닥시장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지난 6월 7조3155억원으로 줄었고 7월부터는 6조원대로 내려오며 감소 추세다.
개인투자자들의 ‘총알’로 여겨지는 예탁금이 급감한 사실도 주식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하는 현상과 궤를 같이 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31일까지 투자자예탁금 평균액은 48조6191억원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투자자예탁금이 50조원을 밑돈 건 지난 2020년 7월(46조5090억원) 이후 약 2년3개월 만이다.
투자자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 계좌에 맡겨두거나 주식을 팔고 찾지 않은 돈이다. 증기 진입을 준비하는 대기성 자금이어서 주식투자 열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통한다.
한편 증시를 이탈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은 고금리를 앞세운 은행 예·적금이나 채권 투자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808조2276억원으로 9월 말(760조5044억원)보다 47조7231억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5대 은행을 포함한 예금은행의 정기예금은 앞서 9월 한 달 간 32조5000억원 늘었다. 지난 2002년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지난달 5대 은행에서만 정기예금이 47조원 넘게 늘면서 전체 증가 폭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시중은행에 10억 이상 초과 고액예금도 무려 790억원 가까이 몰렸다.
지난 6월 말 기준 정기예적금, 저축예금, 기업자유예금 등 은행의 저축성예금 가운데 잔액이 10억원을 초과하는 계좌의 총 예금 규모는 787조91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말(769조7220억원) 대비 2.4%(18조1930억원) 늘어난 수치이자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 규모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도 10%(71조6800억원) 가량 급증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수익률보다 안전성에 초점을 맞춘 트렌드가 뚜렷하다”며 “백화점 대신 고금리 특판 상품을 위해 은행으로 달려가는 ‘은행 오픈런’과 신규 채권 투자자를 뜻하는 ‘채린이’등 신조어가 등장하는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인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채권시장에도 적극 뛰어드는 중이다. 올해 들어 지난 2일까지 장외 채권시장에서 개인투자자가 순매수한 채권금액은 16조9395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4조4943억원)의 네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개인투자자의 월별 채권 순매수 규모는 지난 7월 약 3조원을 기록한 뒤 8·9월 연속 3조원대를 기록했다. 다만 개인은 10월 한 달 동안에는 2조3135억원을 순매수해 규모가 다소 줄었다.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과 레고랜드 사태 등이 채권 투자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1월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인상이 거의 확정된 만큼 시중은행의 수신금리도 한 차례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역 머니무브 현상은 더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