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국책연구원 일제히 성장률 낮춰..."수출·내수 동반 침체"
"2% 밑돈건 역사상 세 번뿐"...KDI "금리 천천히 좀 올리자"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경제 복합위기가 심화하고 각종 경제 지표가 점차 어두워지면서 내년 한국 경제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의 여파로 수출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내수 전망도 밝지 않아서다. 국민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물가와 고용 상황도 상당 기간 어려울 거로 전망된다.
이에 일각에선 경기하강기가 내년에도 지속될 거로 보이는만큼 복합위기의 한 축인 '금리'에 대한 인상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엔 국내 연구기관들은 물론, 해외 투자은행까지 내년 우리나라 성장률 하향 조정에 나서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내년 성장률을 1.8%로 전망했고, 한국경제연구원도 1.9% 성장 전망을 언급했다. 피치도 1.9% 전망치를 내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2%,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3%를 제시하는 등 국제기구들은 2%대 초반으로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초 2.3%를 전망했는데, 지난 10일 보고서를 내고 성장률이 1.8%까지 떨어질 거란 하향된 수정 전망을 발표했다.
여기에 내년 2.1%의 성장률을 점쳤던 한국은행 마저 사실상 내년 경기둔화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내려 잡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의 우려대로 만약 내년 성장률이 1%대로 내려간다면 1998년 IMF 외환위기 때 -5.1%,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0.8%,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0.7% 등 대형위기 때를 제외하고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민간 연구기관은 물론 국책 연구기관까지 내년 성장률 전망을 더 낮게 수정 중인 이유는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악화가 꼽힌다.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액은 524억8000만달러(약 75조원)로 전년동기대비 5.7% 줄며 2020년 10월 이후 2년 만에 처음 감소세를 기록했다.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무역수지는 67억달러 적자로 지난 4월부터 7개월째 적자가 계속됐다.
반도체 경기 둔화, 대외 불확실성 증가 등의 영향으로 설비투자도 흔들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월대비 설비투자는 지난 7월 3.2% 감소한 후 8월 10.7% 증가로 전환했다가 9월에 다시 2.4% 감소로 돌아섰다. KDI는 전년대비 설비투자(연간)가 올해 -3.7%를 기록하고 내년에도 0.7%의 낮은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소비는 코로나19의 점진적 극복으로 비교적 양호한 모습이지만 계속되는 고물가, 이태원 참사 등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전망이 어둡다. 정부가 재정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내년 예산을 올해 총지출(본예산 및 1·2차 추가경정예산 포함)보다 6% 줄인 639조원으로 편성해 정부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에도 한계가 있다.
정부도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어려워지고 성장률도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미 여러 차례 '내년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기재부 간부회의에서도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이 악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엄중한 상황도 지속될 것이며 특히 내년 상반기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비상한 각오로 대응해달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정부는 다음 달 내년 경제정책방향과 함께 공개할 경제전망에서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연간 성장률이 2%선 아래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9년(0.8%), 코로나 사태가 본격화됐던 2020년(-0.7%) 등 두 번뿐이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 9일 '2022년 하반기 경제전망' 사전브리핑에서 "과거에는 우리 성장률이 3~4% 정도였기 때문에 내년 1%대는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평가해야 한다"면서도 "우리나라 성장 추세 자체가 2% 내외이기 때문에 1%대 후반이 나온다고 아주 큰 위기라고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DI는 통화정책과 관련해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되 경기둔화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인상 속도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규철 실장은 "기준금리를 언제 몇 %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당분간 천천히 인상하면서 물가의 흐름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