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통화긴축 정책 유지 입장…KDI, 고물가·고금리로 내년 경기 둔화 전망
대기업들, 투자 축소에 현금 확보 주력…중소기업 대출금리 약 9년 만에 최고치
[매일일보 여이레 기자]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예상을 크게 하회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속도가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전망되나 한국은행은 통화긴축 정책을 이어간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경기침체가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은-한국경제학회(KEA) 국제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은행의 긴축적 통화 정책 입장을 재확인하는 발언을 했다.
이 총재는 “긴축적 통화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물가안정기조를 공고히 하고 인플레이션 수준을 낮추는 것은 여전히 한국은행의 우선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인플레와 통화정책의 긴축 아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자금흐름을 비은행부문으로 어떻게 환류시킬 것인가는 한은이 당면한 또 하나의 정책 이슈”라고 말했다.
13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고물가와 고금리로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부진해져 내년부터 경기 둔화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KDI는 내년 한국 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KDI는 내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하향 조정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8%에서 2.7%로 소폭 낮췄다. KDI 전망대로 내년 성장률이 1%대에 그친다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0.8%), 코로나19가 발생한 2020년(-0.9%)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KDI는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이 흔들리는 점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지목했다. KDI는 내년 수출 증가율을 올해 수출 증가율 4.3%에서 절반 이상 수준인1.6%로 내다봤다. KDI는 “글로벌 경기 둔화로 수출 금액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감소한 상황”이라며 “수출 부진으로 인해 한국 경제 성장세가 약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전력사용량도 1년 8개월 만에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사용량 감소는 공장 가동률 저하 등 경기 침체의 징후가 될 수 있다. 지난달 수출이 2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 이어 전력사용량도 줄어들면서 한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금리·고환율에 일부 대기업들은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자산을 매각하거나 투자를 미루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주요 대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 불확실한 경제 전망이 지속되자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 사옥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충북 청주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공장 설립을 연기했다. 내년 설비투자 규모도 올해 대비 50% 이하로 축소할 계획이다. 현대차도 올해 투자 계획을 연초 목표로 했던 9조2000억원에서 3000억원 감소한 8조9000억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삼성전자는 빚을 줄이고 있다. 3분기 말 기준 차입금은 12조4620억원으로, 전 분기 17조4390억원 대비 5조원 감소했다.
지난 9월 예금은행의 신규 취급액 기준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4.87%로 2014년 1월 이후 거의 9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중소기업 대출 가운데 금리가 5% 이상인 비중은 40.6%로, 1년 전보다 13배 넘게 뛰었다.
자금 경색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자 부담까지 가중되면서 중소기업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은은 오는 24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