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정부의 유동성 대책에도 불구하고 돈줄이 급한 기업들이 자금시장 경색에 신음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50조원+α' 규모의 긴급 시장안정대책을 내놓은 후에도 지난 11일에도 2조8000억원 규모의 추가 대책을 내놓았지만 기업어음(CP)금리가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고,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을 보여주는 '신용스프레드'도 금융위기 이후 최대폭으로 벌어지고 있다.
17일 채권시장에 따르면 자금시장의 '블랙홀'로 지목된 한국전력공사채의 발행금리가 6% 돌파를 눈 앞에 두고 꺾이는 등 단기 자금시장이 한숨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일 고공행진을 지속하며 4.5%를 넘어섰던 국고채 3년물 금리도 3.8%대로 떨어지며 안정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일단 급한 불만 꺼진 것일뿐, 연말 결제 수요가 겹치면서 단기 자금시장 경색이 지속될 거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17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15일 실시된 한국전력공사채(한전채) 발행 입찰에서 2년물과 3년물이 각각 5.7%, 5.8%에 낙찰돼 각각 4200억원, 700억원 어치 발행됐다.
직전인 10일 발행된 한전채 2~3년물 금리가 각각 5.95% 였던 것과 비교해 큰 폭 낮아진 수치다. 한전채 금리는 지난 8일 2~3년물이 각각 5.99%에 발행돼 6%를 돌파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었다. 6% 돌파를 목전에 두고 하락세로 전환한 것이다.
한전채 금리는 올 초만 해도 3년물(1월) 금리가 2.33%, 2년물(3월) 금리가 2.73%로 2%대에 불과했다. 이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올해 6월 2년물과 3년물이 각각 4.08%, 4.35%로 4%를 넘어서더니 고공행진을 지속해 왔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직전 발행된 한전채 2~3년물이 5.95%대에 발행된 점과 비교해 보면 일단 급한 불은 꺼진 듯 하다"며 "크레딧 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당국이 한전채 발행을 자제하고 은행 대출로 전환할 것을 지시한 데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속도조절 기대감도 금리안정에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400원을 넘어서며 고공행진 하던 원달러 환율이 최근 1330원대로 내려선 데다, 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 우려가 커지면서 한국은행이 다음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등 속도조절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의 만성적자 구조상 금리 안정을 위해서는 한은의 긴축속도 조절이 필수적인데 다음주 배이비스텝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전채 금리 안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5%대까지 치솟았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 3.808%까지 떨어졌다. 두 달이 안되는 시기 동안 0.7%포인트 가량 하락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을 보여주는 신용스프레드는 더 악화되고 있다. 전날 우량등급 회사채(AA-등급) 3년물 금리가 연 5.416%를 기록하면서 국고채 3년물과 회사채 3년물 간 차이인 '신용스프레드'가 160.8bp(1bp=0.01%포인트)로 벌어졌다. 이는 2009년 5월 16일(165bp) 이후 13년 6개월 만 가장 큰 폭이다. 과거 장기평균(2012~2021년중 43bp)과 코로나19 위기시 고점(78bp)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신용스프레드는 국고채와 회사채 사이 금리 격차로 이 수치가 커지면 시장이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것을 뜻한다.
단기자금시장의 '바로미터'인 91일 만기 CP금리도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는 경색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CP 금리는 전날 5.26%에 마감해 연고점을 경신했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월 13일(5.37%)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최근 국고채 금리가 진정세를 보이는 것과는 다른 흐름이다. CP 금리는 지난 9월 22일부터 38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해 오고 있다. 돈줄이 급한 기업들이 CP 시장으로 몰려든 영향이다.
여전히 프로젝트파이낸싱(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차환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다수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도래 예정인 PF-ABCP와 PF-ABSTB 규모는 34조원으로 집계된다.
정부가 지난달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방안을 내 놓은 지 3주가 지났지만, 단기시장 반응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급한불은 껐지만 단기시장 자금경색이 지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신용도를 반영하는 CP 금리 상승은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며 "연말 결산시즌으로 인한 수급 불균형도 고려하면 이미 확산된 신용위험이 단기간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