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상품 포트폴리오 구성 시 한도 제한
유동성 관리 비상 ‘예수금 유치’ 경쟁 과열 전망
[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저축은행 자산 성장의 일등공신인 퇴직연금 자산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이달부터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본격 시행한다. 이 제도는 퇴직연금 가입자가 별도로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정한 상품으로 돈을 굴리도록 했다. 디폴트옵션 상품 포트폴리오 구성 시 최대 3개사의 상품까지만 넣도록 했는데, 퇴직연금감독규정상 저축은행 상품은 다른 업권과 달리 1인당 가입 한도가 5000만원으로 제한됐다. 저축은행의 상품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 가입 한도가 생기는 셈이다.
21일 저축은행업계 따르면 저축은행 퇴직연금 예·적금 잔액은 작년 말 기준 20조9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저축은행 연금 자산은 지난 2018년 1조2000억원에 그쳤지만, 2019년 6조7000억원, 2020년 13조4000억원, 작년 20조원을 넘어서며 약 4년 만에 20배 가까이 불었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판매사도 2018년 23개사에서 32개사로 늘었다. 현재 저축은행 전체 수신의 40%가 퇴직연금 자산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앞으로 저축은행이 보유한 퇴직연금 자산이 위축할 가능성이 높다. 이달 확정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상품에 저축은행 예금이 제외됐다. 이제까지는 저축은행 예금에 들어간 퇴직연금은 만기가 돼도 가입자가 따로 정하지 않으면 같은 상품에 자동으로 재예치됐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노동부는 저축은행 상품이 고용부의 원리금 보장 상품의 디폴트옵션 승인 요건 가운데 상시 가입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저축은행 상품은 다른 업권과 달리 퇴직연금감독규정상 1인당 가입 한도(5000만원) 제한이 있고, 저축은행별 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부가 디폴트옵션 상품 포트폴리오 구성 시 최대 3개 사의 상품까지만 넣도록 한 만큼 저축은행 3개 사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도 총 1억 5000만원까지만 가입할 수 있다.
디폴트옵션 상품을 구성하는 퇴직연금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1인당 가입 한도가 있는 저축은행 상품을 굳이 포함시키지 않을 수 있다. 저축은행 업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개 이상의 저축은행 상품을 혼합해 상시 가입 가능 요건을 충족하는 포트폴리오 상품을 마련·건의했으나 고용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폴트옵션에서 저축은행이 빠지면서 유동성 관리 차원에서 예수금 유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 그간 저축은행은 원활한 예수금 조달 환경에 힘입어 빠른 자산 성장이 가능했다. 저금리 기조에서 은행보다 높은 예금금리 매력을 내세웠고 퇴직연금을 통해서도 예수금을 빠르게 흡수했다.
저축은행들은 현재도 예수금을 확보를 위해 금리경쟁에 돌입한 상황이다. 저축은행권의 정기예금 금리는 현재 6%대에 진입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OSB, 대신, 머스트삼일, 상상인, 키움 등에서 정기예금 연 6% 이자를 제공한다. 저축은행의 12개월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5.42%까지 올라섰다. 연초 2.37%에서 2배 넘게 오른 수치다.
김석우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디폴트옵션 제도시행은 저축은행 조달 환경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아 예수금 금리경쟁을 가속해 저축은행 산업 전체의 조달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