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홍석경 기자] 올해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통계 작성 이후 18년 만에 처음 전년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지난 한 해 내내 금리가 치솟고 부동산·주식·코인 등 자산 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인데, 정부도 당분간 이런 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은행들에게 아예 내년 가계대출 관리 목표조차 요구하지 않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달 15일 현재 693조6469억원으로, 작년 말(709조529억원)보다 15조4060억원 줄었다.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 포함)이 1년 사이 6조3564억원(505조4046억원→511조7610억원) 늘었지만, 신용대출이 18조2068억원(139조5572억원→121조3504억원)이나 급감했다.
은행뿐 아니라 저축은행·상호금융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까지 포함한 전체 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역시 올해 들어 10월까지 9조6812억원(작년 12월 1261조4859억원→1251조8047억원) 감소했다.
이 월별 통계는 2003년 10월부터 집계됐는데, 연간 증감을 확인할 수 있는 2004년부터 지금까지 예금은행은 물론 전체 예금취급기관 기준으로도 연말 가계대출 잔액이 전년 말보다 줄어든 적은 없다.
따라서 5대 은행의 15일 현재까지 추세, 고금리로 극심한 대출 부진을 겪고 있는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상황 등으로 미뤄 올해 은행과 전체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잔액이 통계 작성 이후 18년 만에 첫 감소 기록을 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올해 이례적으로 가계대출이 뒷걸음친 것은, 무엇보다 대출자들이 감당하기에 금리가 너무 부담스러운 수준까지 뛰었기 때문이다. 올해 초 4%대 후반이었던 시중은행의 주택담보·신용대출 금리 상단이 최근 8%에 바싹 다가서자 대출자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포함한 신용대출부터 서둘러 갚고 있다.
여기에 2020년까지 뜨거웠던 부동산·주식·코인 시장도 올해 차갑게 식으면서,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노린 대출 수요도 급감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주요 은행들은 12월 중순인 지금까지 아직 당국으로부터 ‘2023년도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를 내라’는 주문을 받지 않았다.
가계대출 억제가 최우선 경제 과제 중 하나였던 지난해의 경우, 당국이 일찌감치 주요 시중은행에 2022년 가계대출 증가율을 4∼5%에 맞추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은행들은 11월부터 일괄적으로 4% 안팎의 올해 가계대출 총량 관리 목표를 제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