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간 하락장...2000년 이후 가장 긴 조정터널
금리·강달러에 짓눌린 韓증시...동학개미도 이탈 행렬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국내 증시가 2000년 이후 가장 긴 조정 터널을 지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강력한 통화긴축 기조로 인한 고금리, 강달러의 풍파 속에 신흥국 증시가 일제히 무너진 영향이다. 유동성 장세에 서둘러 올라탔던 동학개미들은 큰 손실을 떠안은 채 서둘러 증시에서 이탈하고 있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투자자들은 평균 22%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개인 순매도 상위 종목의 하락률을 살펴보면 개인투자자 가운데 올해 평균 수익률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손실을 본 경우가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1월 3일~12월 20일) 개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건 삼성전자(15조8000억원)로 같은 기간 25.16% 하락했다. 순매수 2위인 네이버(3조2000억원·-52.31%)와 3위 카카오(2조2000억원·-51.73%)는 올 들어 반토막 났다.
비교적 최근 증시에 유입된 2030세대는 증시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2030세대가 열광했던 상장(IPO) 기업의 주가 하락폭이 특히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IPO 대어’로 꼽히던 카카오페이와 카카오뱅크, 크래프톤 등은 공모가 대비 30~60% 하락했다.
국내 증시는 1년 내내 미국의 강도 높은 통화긴축 정책에 휘둘렸다. 물가 상승률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Fed는 지난 3월 제로금리를 포기하고 네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했다. 증시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입’에 좌지우지됐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작된 달러화 강세도 국내 증시를 무너뜨렸다. 올 들어 외국인 투자자는 약 10조원을 순매도했다. 비달러화 자산 중 외국인이 가장 손쉽게 투자금을 뺄 수 있는 것이 한국 증시였다는 분석이다.
세계 주요국 중 나홀로 ‘제로 코로나’ 정책을 유지한 중국 경제에 대한 우려도 한국 증시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 전체 수출액 중 대(對)중국 수출 비중은 25%에 달한다. 1년 내내 지속된 반도체 업황 우려로 인한 반도체 주가 급락도 증시를 짓눌렀다.
특히, 올해 국내 증시는 2000년 닷컴버블 붕괴 이후 최악의 조정장을 통과 중이다. 하락폭만 놓고 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40.73%) 때가 올해보다 컸지만, 당시 하락장은 약 1년 만에 마무리됐다.
세계 중앙은행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펼친 저금리 정책 덕분에 2009년 코스피지수는 다시 49.65% 반등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증시 조정은 올해 말까지 1년6개월간 이어졌지만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2000년 초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1년9개월간 이어진 하락장 이후 가장 긴 조정 터널이다.
그 결과 동학개미는 서둘러 증시에서 탈출하고 있다. 올 초 71조7000억원 수준이던 투자자 예탁금은 지난 20일 기준 45조3000억원으로 1년 새 약 37% 급감했다. 거래대금도 급감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일평균 10조원을 훌쩍 넘기던 거래대금은 반토막 났다.
새해에도 코스피 지수가 반등 기회를 찾기는 어려울 거라는게 증권가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내년 증시에서 코스피 최고점이 올해 고점을 조금 넘어서는 2670선 언저리에 머물 것으로 봤다.
반면 경기침체 우려가 깊어지면서 금리인상 속도 둔화 등의 요인에도 불구하고 코스피 추가 하락의 가능성도 나온다. 최악의 경우 2000선도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증권사들이 보수적인 전망치를 내 놓은 것은 올해 코스피 전망치를 최대 3600선 돌파로 잡으며 희망섞인 관측을 내놨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공격적인 금리인상으로 증시 전망이 무참히 빗나가면서 보수적인 관점이 크게 강화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증권사들은 내년 1분기에서 상반기 사이 기업 실적 하강이 본격화되는 등 경기침체 우려로 코스피가 올해 저점을 밑돌 수도 있지만 하반기부터는 회복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주식시장 하락분은 이미 금리인상과 경기침체를 상당부분 선반영했다"며 "내년에는 실제 경기침체가 나타나지만 금리인상은 마무리 국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내년 1분기는 경기 침체 우려와 고금리 여파로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하반기 금융긴축 사이클 해제 기대를 반영해 점진적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