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 사의 표명
사실상 '윤심' 등져…출마 시 '친윤' vs '비윤' 구도
[매일일보 염재인 기자] 나경원 전 의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하면서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간 당 안팎의 불출마 압박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됐던 '저출산 대책' 발언에 대해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나 전 의원이 정치적 승부수를 띄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나 전 의원이 사실상 출마를 결심한 만큼 향후 당권 주자들 간 '친윤' 대 '비윤' 구도가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나 전 의원은 이날 오후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 전 의원은 김 실장에게 사의를 표명하면서 "대통령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취지의 의사를 전했다고 알려졌다.
나 전 의원은 최근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내놓은 '대출 탕감' 저출산 대책을 놓고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어왔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나 전 의원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위원장인 대통령과 전혀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위원회 일원으로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라고 밝혔다. 지난 6일에는 안상훈 사회수석이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자청해 나 전 의원 발언을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정면 반박한 데 이어, 대통령실 참모들도 "해촉"까지 언급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에 대한 비판이 '정치적 해석'이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여론은 대통령실에서 흘러나오는 과도한 반응들을 고려할 때 '윤심'이 나 전 의원에게 향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당내에선 여전히 친윤(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나 전 의원의 출마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1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은 본인이 원해서 간 자리"라며 "3개월밖에 안 됐기 때문에 이 일을 맡은 이상 여기에 충실해서 정말 제대로 일해 보라"라며 출마를 만류했다. 또 다른 친윤계인 박수영 의원도 페이스북에 "석 달도 채 안 돼 던지고 당대표 선거에 나오겠다는 건 스스로 공직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걸 자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질타했다.
현재 나 전 의원은 지난 8일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었던 '저출산 대책'에 대해 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해명 내용이 사실상 윤 대통령에게 맞서는 발언이라는 점, 또 잇따른 당내 불출마 압박 발언들에 경고장을 날렸다는 점에서 당대표 출마 결심을 굳힌 게 아니냐는 해석이 많았다. 특히 최근 전당대회 출마 관련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늦지 않은 시기에 결단을 내리겠다", "마음을 굳히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하는 것도 이런 관측에 힘을 보탰다.
때문에 여권 인사들 사이에선 나 전 의원이 설 연휴쯤 출마 선언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 표명으로 나 전 의원의 출마 결단이 좀 더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나 전 의원이 출마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사이 유력 당권 주자들은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김기현‧안철수‧윤상현 의원 등 국민의힘 주요 당권 주자들이 전당대회 출사표를 던지며 당권 레이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전날(9일)에는 김기현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 각각 캠프 개소식과 출마 선언 자리에서 서로 견제구를 날리는 등 당권 주자 간 치열한 경쟁을 예고했다. 유승민 전 의원의 경우 10일부터 고향인 대구를 방문해 방송 출연과 지역 언론인 간담회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당권 주자들도 나 전 의원의 출마를 두고 셈법이 분주해진 분위기다. 김기현 의원은 지난 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나 전 의원 출마에 대해 "정부직을 맡으면서 당 대표를 한다면 국민 정서에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비판이 들어올 것"이라고 견제구를 던졌다. 반면 이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의원은 "당 대표 출마자는 많을수록 좋다. 당 대표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 투표권이 없는 일반 국민도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나 전 의원의 출마를 요구했다.
만약 나 전 의원이 '윤심'을 등지고 당대표 출마를 결심한다면 당권 구도는 '친윤' 대 '비윤' 구도가 명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당심에서는 나 전 의원이, 민심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선두를 달리는 만큼 경우에 따라 '윤심'에 기댄 다른 당권 주자들과 다른 파급력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