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폭탄 째깍…“20년 전 카드사태 이후 리스크 최고조”
금융지원 '착시효과'도 사라져...금리인상 후폭풍 본격화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금융권 전반의 연체율이 슬금슬금 오르면서 부실 관리가 발등에 불이 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잇단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이자 부담 증대가 지속되자 마침내 한계상황까지 내몰린 가계와 기업이 수면 위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는 얘기다.
향후 높은 대출 금리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경기 침체 본격화, 금융지원정책 효과 소멸 등이 겹치면 중기와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우리 경제의 부실 규모가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은행 대출 총괄 담당자들이 향후 3개월간 전망한 가계의 신용위험 수준은 연체 폭탄이 터진 과거 카드대란 때처럼 역대 최고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 데다 금리 상승까지 가중된 결과로 풀이된다.
1일 한국은행의 ‘금융기관 대출행태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중 국내은행이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있는 가계에 대해 전망한 신용위험지수는 각각 44를 나타냈다.
이는 카드대란 사태로 연체율이 30%에 육박하는 등 가계의 신용위험이 정점에 이르던 2003년 3분기(44)와 같은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다. 코로나19 사태 영향이 본격화한 2020년 2분기(40)보다도 높은 수준으로 그만큼 가계의 신용위험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신용위험지수가 플러스면 신용위험 증가를 의미하며, 향후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보는 금융기관이 더 많다는 뜻이다. 기준치는 ‘0’이며 100과 -100 사이에 분포한다.
저축은행, 카드사, 보험사, 상호금융 등 비은행금융기관 대출 총괄 담당자들도 올해 1분기 중 대출을 보유한 가계의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봤다.
업권별로 신용위험지수를 보면 저축은행(지난해 4분기 52→올해 1분기 전망 45), 상호금융(44→51), 카드사(25→25), 보험사(42→40) 등 모든 업권에서 공통적으로 플러스를 나타내 가계의 신용위험을 우려했다. 이에 따라 비은행금융기관들은 가계의 채무상환 능력을 우려해 앞으로 가계대출에 대한 강화 기조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준금리 인상으로 기업과 가계를 합산한 민간부문 대출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1월 내놓은 ‘금리 인상에 따른 민간부채 상환 부담 분석’ 보고서에서 올해 민간부문 대출이자 부담이 지난해보다 33조6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26일 개최한 ‘2023년 자본시장 전망과 주요이슈’ 세미나에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건전성 문제가 올해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식과 회사채 발행시장 위축으로 기업대출 잔액이 계속 늘어나면서 저신용기업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총자산 하위 20% 기업은 최근 1년간 이자 비용이 39% 증가,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기업 비중이 54%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지난해 10월 기준금리가 3.25%로 높아지면 한계 소상공인은 127만명까지 불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올해 금리 고공행진에 경기 침체가 덮칠 우려마저 있다는 점이다. 우리 경제의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은 -0.4%로, 2년 6개월 만에 역성장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역시 마이너스 성장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간으로는 한은이 제시한 1.7% 성장률 달성도 불투명하다.
한은은 지난해 말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향후 대출금리 상승세가 이어지고 매출 회복세 둔화, 금융지원정책 효과 소멸 등이 겹치면 자영업자대출 중 부실 위험 규모가 올해 말 40조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고스란히 은행 대출 연체율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금융시스템 전체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금융안정보고서는 “자영업자대출 부실위험 축소를 위해서는 취약차주의 채무 재조정을 촉진하고 정상 차주에 대한 금융지원조치의 단계적 종료, 만기 일시상환 대출의 분할상환 대출 전환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금융기관들이 대손충당금 적립 규모를 확대하고 선제적으로 자본을 확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