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CEO 선임 넘어 이사회 구성까지 개입 시사
尹 금융인맥 전면에...금융권 "新관치 서막 올라" 우려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관치금융’ 논란이 다시 뜨겁다. 매 정권마다 불거진 논란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최근 금융지주 회장 선출 과정에서 수장들의 잇따른 낙마와 그 자리를 꿰찬 ‘낙하산 인사’들을 둘러싼 뒷말이 무성한 것도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대변한다.
정부는 은행 등 금융지주사가 공공재이니만큼 일정 수위의 견제가 불가피하다면서 '강공 드라이브'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혔다. 2020년 6월 정부가 발의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한 뒤 1분기 중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후속조치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2월2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건 '관치'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가 금융지주의 CEO 선임 문제만 건드리는 거로 그치진 않을 거라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셀프연임’과 ‘장기집권’으로 대변되는 금융그룹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도 손질하겠다는 구상을 내비쳤다. 금융지주 최고경영자들이 우호 세력으로 이사회를 구성해 임기를 연장하는 이른바 '회전문 인사' 행태를 이번 정부에서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최근 우리금융 회장 선거에서 '실력 행사'를 한 게 대표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물어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의결했다. 금융 당국의 중징계를 받게 되면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회장직 유지가 어려웠으나 손 회장은 연임 때처럼 소송전을 불사하고서라도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3연임 반대 기류가 커지고 금융 당국의 압박 강도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 3연임이 확정적이란 예상이 많았던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도 내정자 발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자진 사임 형식으로 용퇴 의사를 밝혔다.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관행에 부정적인 정부의 의중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다만 금융권에선 또다시 '관치금융'의 서막이 오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먼저 금융 당국이 금융지주 이사회 운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엄연한 사기업인데도 정부에서 은행을 공공재라고 정의하며 당국이 사외이사 평가체계, 경영승계 표준안 등을 마련하고 주주환원 정책에도 간섭하는 등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과도하게 금융권 인사에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최근 선임된 금융권 수장 대다수가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의 '금융인맥'이라는 점에서 이런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 신임 회장과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먼저 이석준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 초창기 좌장을 맡았고, 이번 정부 경제정책 작업에도 관여했다. 대통령 당선인 특별고문으로도 활동했다. 임종룡 회장은 대선 캠프에서 직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윤 대통령의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정부의 초대 총리로 하마평에 오를 정도였다.
지난해 BNK금융 회장의 중도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를 꿰찬 빈대인 BNK금융 회장 역시 여권 인사로 분류된다. 빈대인 회장은 지난해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부산 남구청장 공천 과정에서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아울러 빈대인 회장은 윤석열 대선 캠프의 금융인 지지자 그룹에서도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예탁결제원 신임 사장도 윤석열 캠프 출신이다. 최근 이순호 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이 내정됐는데, 이 실장은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 경제 분야 싱크탱크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비상임 자문위원도 지냈다.
이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금융인맥들이 주요 요직을 꿰차자 금융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먼저 우리은행 노조는 임종룡 회장이 내정되기 전부터 대립각을 세웠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 당국 수장이 연이어 우리금융지주 경영권 승계 과정을 지적해 손태승 회장 연임을 저지하더니 임종룡을 낙하산으로 밀어넣었다"고 성토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금융사 지배구조 개편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 금융인맥들의 자리 만들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오는 3월 주요 금융지주 사외이사 약 70%가 임기를 마치면서 신임 사외이사 후보군에 벌써부터 대통령직인수위와 캠프 출신 경제 전문가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는 정부 측 인사들이 사외이사로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관치금융 논란은 과거 정부에서도 있었다. 이명박(MB) 정부 때는 대통령과의 개인적 인연을 고리로 국책은행과 금융지주 수장 자리에 오른 이들이 위세를 떨쳤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등 이른바 금융권 ‘4대 천왕’이다. 이들을 둘러싼 부정부패 의혹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이팔성 전 회장은 자신의 비망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일가에 뇌물을 전달했다고 밝혔고, 2020년 대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이팔성 전 회장 등에게서 회장 선임·연임 대가로 받은 뇌물을 인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