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불법·탈법 증여 기승…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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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불법·탈법 증여 기승…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어디에
  • 이상민 기자
  • 승인 2023.02.2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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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건설사회부장
이상민 건설사회부장
공인중개사를 통하지 않고 매수인과 매도인이 직접 거래하는 이른바 ‘부동산 직거래’가 늘고 있다. ‘빌라왕’ 등 전세 사기 사건에 일부 공인중개사들이 개입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인중개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탓으로 돌리기에는 그 숫자가 너무 급격히 늘어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국토교통부의 조사에서 탈세를 위한 편법 증여 등 불법 의심 사례가 대거 적발됐다. 국토부가 직거래를 조사하기 위해 이상 거래 802건을 찾아내 기획 조사한 결과. 편법 증여나 명의신탁 등 불법 의심 거래 276건을 적발해 낸 것이다. 수상한 거래의 3건 중 1건이 불법 거래였던 셈이다.
적발된 사례 중에는 아버지가 대표로 있는 회사가 보유한 21억원짜리 법인 명의 아파트에 보증금 8억5000만원을 내고 전세 계약을 한 뒤 아버지에게 증여받은 돈으로 이 아파트를 사들인 경우도 있었다. 이미 살고 있던 전세보증금과 아버지에게서 증여받은 12억5000만원으로 매매자금 21억원을 조달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없이 직거래한 점 등을 수상히 여긴 국토부의 계좌 추적 결과 8억5000만원의 전세보증금을 회사에 임금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나아가 법인의 장부에도 입금 등 처리 내역이 전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법인자금을 유용 등의 혐의까지 의심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아빠찬스’를 활용해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20억원이 넘는 아파트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 같은 편법 증여 의심 직거래는 적발된 276건의 불법 의심 거래 가운데 77건에 달한다. 변변한 소득이 없는 20대 자녀 2명이 거래대금 전액을 부모로부터 편법으로 증여받아 탈세한 사례도 있었다.
먼저 부모가 두 자녀에게 각각 5억원씩을 증여해 17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사게 한 뒤 보증금 8억원에 자신들이 전세 계약을 맺으면서 두 자녀에게 아파트 매입자금 전액을 편법 증여한 것이다. 이들은 두 자녀의 아파트 취득세까지 대신 내준 것으로 밝혀졌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직거래를 편법증여나 명의신탁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거래 침체 속 시세를 왜곡해 시장 불안을 초래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며 "불법행위를 엄정히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내달 2일부터 지난해 9월 이후의 부동산 직거래에 대한 2차 기획조사를 벌인다. 2차 조사에서는 불법 사례가 하나도 적발되지 않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기대일까. 지금 비싼 집값 때문에 이 땅의 젊은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이런 편법·불법 증여 소식을 접한 많은 젊은이가 또 한 번 좌절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자신들의 재산이나 집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재산을 물려주더라도 증여세 등 최소한의 세금은 내고 정당한 방법으로 물려주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미 젊은이들의 출발점은 평생을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괴리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라는 말이 있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는 그에 걸맞은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요구된다는 말이다. 자신들의 지위와 재력에 걸맞은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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