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韓‧日 관계, 득인가 실인가

기업 규모 및 취급 분야 따라 업계 희비 갈려 반도체·전기차·문구·생활용품·완구·출판 업계 기대감 상승 日소부장 기업 진출로 '소부장 국산화' 의지 상실 우려

2024-04-03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한국과 일본의 경제 공조 기조가 확산되는 가운데, 기업 규모 및 취급 분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반도체·전기차 기업과 문구·생활용품·완구·출판 업체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반면, 과거 양국 교류 경직 시기에 국산화 중요성이 대두된 일부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산업연구원에게 의뢰한 ‘신산업 분야 한․일 협력 증진 방안’ 보고서에서 한‧일 협력이 유망한 신산업으로 △차세대 반도체 △전기차․배터리 △모빌리티 등을 제시했다. 일본제 반도체소재의 의존도가 높았던 반도체 제조 대기업들은 일본과의 경제 교류 확대 기조에 따라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의하면 지난해 반도체 식각 장비 또한 미국에서 53.7%, 일본에서 35.5%를 수입하고 있다. 반도체소재는 일본(40.1%)과 중국(17.1%)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사와 힘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 대만의 수입구조도 일본(45.7%)과 중국(15.8%)에 편중됐다. '소부장 국산화' 의지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결과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이 한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상황이다. 소재 대부분을 공급하는 일본을 무시하고는 업계 최고로 나서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차로의 전환히 급격히 이뤄지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내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부품 등 비중이 생산원가의 70% 이상 차지해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다. 전경련의 보고서는 관련 소재 부품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일본과의 시너지를 기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도 이번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해 기대감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기업 한·일 경제협력 인식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중 76.6%가 대일 경제교류 확대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특히 대일 수출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이다. 앞서 2019년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조치 이후 국내 45.6%의 기업이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했다. 2023년 현재 중소기업의 대일 수출분야는 소재·부품 34.5%, 기계장비 29.2%, 문구·생활용품 16.4% 순이다. 반일 정서 확산으로 피해가 컸던 일본 애니메이션 및 게임 관련 상품 생산·유통 업체(완구, 문구, 출판)는 이번 한일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일본 도서 출판업체 D사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경직되고 반일 불매 운동이 확산되며 관련 업체들의 피해가 컸다”며 “국내서는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 정도의 인기를 누리는 콘텐츠는 거의 없다. 이번 한일 관계 개선으로 그동안 일본 문화를 소비하던 이들을 죄악시 하던 인식이 바뀌면 업계는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한일 경제 교류 확대에 대해 부정적인 기업들도 있다. 관련 중기중앙회 설문조사(중소기업 304개사 대상)에 따르면, 일본과의 경제교류 확대 의향이 없다고 응답한 기업은 23.4%다. 부정적으로 응답한 기업 71개사는 △일본 시장 매력도 저하 39.4% △원자재 등 국산화 완료 19.7% 등을 이유로 한일 경제교류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 특히 대일 관계 악화 당시 ‘국산화’가 강조되며 육성됐던 국내 소부장 업계는 이번 개선을 우려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소부장 종합포털 '소부장넷'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산 소부장 수입액은 전체의 15.08%로, 2012년 일본산 소부장 수입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2012년 당시 일본산 수입 비중은 23.8%다. 2019년 일본의 소부장 수출 규제 이후, 정부는 서둘러 관련 산업의 국산화를 추진했다. 그 결과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 수입액에서 일본 비중은 2018년 32.6%, 지난해 21.9%로 크게 감소했다. 반도체 관련 수입액 일본산 비중은 같은 기간 34.4%에서 24.9%로 줄였다. 일각에서는 과거 일본에 의지하던 구도를 탈피하고 어느정도 자립성을 키운 만큼, 이번 한일 경제 교류로 국산화에 대한 의지가 약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게다가 향후 조성될 용인반도체산단에 일본 소부장 기업을 유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국내 소부장 기업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경기 안성 반도체·디스플레이 전문 N사 생산팀장은 “이전 정권에서도 일본 소부장에 대한 의존도만 줄었을 뿐, 사실상 국산화가 원활히 이뤄졌다고 말하기 힘들다”며 “적어도 소부장 국산화는 지속돼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한일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본산 소부장 수입 비중이 줄어든 사이, 중국산 수입 비중은 오히려 늘었다. 2020년 27.42%, 2021년 28.61%, 29.58%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