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제주 4.3의 비극'과 여전한 국가폭력

2024-04-03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오늘은 제주 4.3항쟁 75주년이다. ‘제주 4.3’은 76년 전 제주를 중심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이라는 게 공유된 인식이다. 군과 경찰 등으로 구성된 서북청년단이 제주 전역에서 저지른 잔인한 집단 학살이었다.

정부가 발간한 ‘제주 4.3 진상조사보고서’는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된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명분은 좌익 빨갱이 색출이었다. 무려 7년 7개월 동안 진행된 토벌 과정에서 민간인 3만 여명이 죽고 자연마을 130여 곳이 불에 타 사라졌던 참혹한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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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4.3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이 시작됐고, 정부 역시 민간인 학살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과 집권 여당이 4.3 항쟁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있자면, 또 다른 국가폭력을 연상케 한다. 윤 정부 출범 이후 여당 인사들은 4.3에 색깔론을 뒤집어씌웠다. 제주 4.3 왜곡·폄훼에 가장 앞장선 이는 탈북민 출신으로 국민의힘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태영호 의원이다.  태 의원은 국민의힘 지도부 선거 과정에서 일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한 뒤 “4·3사건은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말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으로 공식 규정된 사건을 북한의 지령이라는 낡은 반공 프레임에 가두려는 발언이었다.  제주 정치권과 도민들이 일제히 규탄했지만 태 의원은 “나는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왜곡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인사가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당선됐고, 이를 통해 사실상 면죄부를 얻었다. 집권 여당의 이같은 행태는 왜곡과 폭력을 더욱 부추기는 모양새가 됐다. 서북청년단 등 극우세력들은 오늘 이순간 제주 4.3항쟁 75주년 추념식 주변에서 왜곡과 혐오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민들에게 4.3은 한동안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금기어였다. 유족들에게 4.3은 어두운 공포이자 질긴 트라우마였다. 1978년 ‘순이 삼촌’을 통해 수면위로 떠오른 뒤 김대중 정부에서 ‘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을 제정하며 첫 발을 뗏다. 이어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후 4.3은 사건이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국가폭력으로써 실체를 드러냈다. 4.3 앞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이념을 초월했다. 4월 3일을 국가추념일로 격상시킨 건 박근혜 정부였다. 진보와 보수정부 모두 국가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4.3의 넋을 기리겠다던 정부는 온데간데 없고, 왜곡된 프레임을 부추기고, 잔인무도한 폭력을 방관하며 제주도민들의  트라우마를 다시 끄집어 내고 있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맞은 4.3추념식에 불참했다. "바빠서"라고 한다. 바쁜 와중에도 이틀 전 대구 서문시장을 둘러보고, 야구장에서 시구를 하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집권당 대표와, 원내대표도 추념식에 불참했다. 대통령을 대신해 제주를 찾은 국무총리가 대독한 추념사는 더 가관이었다. 진실 규명과 화해의 메시지는 없고 '기업 유치 지원' 등 뜬금없고 빈약한 추념사를 읊어댔다.

이 정도면 정부 여당의 4.3에 대한 노골적이고 의도적인 홀대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분단으로 인한 한국 현대사의 가장 슬프고 잔인했던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입으로만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 것이 아니다. 4.3의 진실 왜곡과 폭력에 지금부터라도 단호한 대처를 하는 게 정부가 해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