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위기를 기회로' SK 최태원호, '찐팬' 확보 속도

올해 경영위기 예고…이환위리·찐팬에 집중 재계 순위 껑충…1998년 5위→2022년 2위

2023-04-03     신지하 기자
이달

매일일보 = 신지하 기자  |  최태원 회장이 이끄는 SK그룹이 이달 8일 창립 70주년을 맞이한다. 지난 70년 동안 가파른 성장을 거듭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섰다. 반도체와 배터리·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집중 육성은 국내 재계 서열 2위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올해는 미중 패권 경쟁과 반도체 한파에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이환위리(以患爲利)' 자세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한편, 관계·신뢰 기반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찐팬(진짜 팬)' 확대에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올해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예고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신년사를 통해 "세계 경제는 기존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정착되기까지 상당 기간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각종 경제 지표들은 견고하지 못하고, 방향성에 대한 신뢰도 약해지면서 기업 활동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고 있다"며 위기감을 내비쳤다. 최 회장은 SK그룹 임직원들에게 보낸 신년 이메일에서도 어려운 경영환경을 언급하며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며 경영시스템을 단단히 가다듬는 기회로 삼아 나아간다면 미래는 우리의 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급변하는 대내외 상황에 대처하는 구성원들을 '프런티어'(개척자)'로 부르며 격려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올해 어려운 경영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별 경영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한편, 한 발 앞선 준비로 위기 이후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10월 최 회장은 그룹 최고경영자(CEO) 세미나 페막 연설에서 '손자병법'에 나오는 '이우위직(以迂爲直) 이환위리'의 자세를 주문하기도 했다. '다른 길을 찾음으로써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의미로,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과 부친인 고 최종현 선대회장의 도전정신과 위기극복 DNA를 재차 당부한 것이다. 특히 최 회장은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관계'의 크기와 깊이, 이해 행보를 지지하관계자들이 갖는 신뢰의 크기에 달려 있다고 봤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를 확장한다면 SK그룹 100년 기업 행보를 지지하는 찐팬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이제는 기업에도 관계가 중요한 시대로, 나를 지지하는 찐팬이 얼마나 있는지, 내가 어떤 네트워크에 소속돼 있는지가 곧 나의 가치"라며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데이터가 중요하고, 이해관계자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돌아보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자"고 주문했다. 최종건 창업주와 최종현 선대회장의 위기 극복과 도전 정신은 경기도 용인시에 마련된 'SK기념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SK그룹 창립 66주년을 맞아 2019년 4월 개관한 SK기념관 내에는 양대 회장의 경영 철학과 그룹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최종건 회장은 1953년 4월8일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수원직물공장 인수, 잿더미 속에서 부품을 찾아 재조립하고 점거해 직기를 가동시켰다. 이것이 SK그룹의 모태인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의 시작이었다. 최종건 회장을 필두로 온 직원들이 힘을 합한 덕분에 이후 선경은 1970년대 국내 최초의 섬유기업집단이 되며 SK그룹 역사의 첫 번째 도약을 이뤘다. 1973년 11월, 최종건 회장의 뒤를 이어 최종현 선대회장 체제가 시작됐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6년 종합무역상사를 세워 수출기업으로의 변화를 이뤄냈고, 폴리에스터 필름을 개발하는 등 화학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이후 선경건설을 세우고, 한국석유화학공사를 인수하는 등 건축과 석유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무자원 산유국에 도전해 해외 석유자원 개발에도 뛰어들었고, 생명공학 분야에도 도전했다. 1991년에는 울산 콤플렉스(CLX) 내 모든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며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선경그룹은 1992~1998년까지 에너지·화학의 고도화 전략에 따른 사업다각화에 나섰다.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정보통신 사업에도 진출,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현재 반도체와 함께 SK그룹의 삼각축으로 불리는 정유(SK이노베이션)·통신(SK텔레콤) 사업은 이때를 기점으로 가파르게 성장하며 국내 1위로 도약했다. 최종건·최종현 회장의 경영 DNA는 최태원 회장이 계승했다. 최종현 회장이 SK를 직물회사에서 석유화학과 정보통신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시켰다면 최태원 회장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등을 통해 반도체·바이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최태원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직후 "하이닉스가 SK 식구가 된 것은 SK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오랜 꿈을 실현하는 의미가 있다"며 30년 전 최종현 회장의 못다 이룬 꿈을 언급했다. 최종현 회장이 1978년 미래 산업의 중심이 반도체가 될 것으로 예견하고 선경반도체를 설립했으나, 전 세계를 강타한 2차 오일쇼크로 꿈을 접어야 했던 과거를 회상한 것이다. 최태원 회장이 1998년 취임할 당시 SK그룹은 매출 37조4000억원, 순이익 1000억원, 재계 순위 5위였다. 2006년 이후 줄곧 3위 자리를 지켰던 SK그룹의 자산은 2021년 기준 292조원으로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치고 자산총액 기준 기업집단 2위로 올라섰다. SK그룹이 재계 2위에 오른 배경으로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꾸준한 투자가 진행된 결과로 분석된다. 당시 공정위는 "SK의 반도체 매출 증가와 물적 분할에 따른 신규 법인 설립, 석유사업 성장으로 SK가 자산 규모 2위가 됐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은 SK그룹의 글로벌 경영에도 전면 나서고 있다. 그는 지난달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유럽 3개국(스페인·덴마크·포르투갈)을 방문해 '2030 부산세계박람회'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한편, 현지 기업인과의 회동을 통해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 열린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도 각국 정상들과 만나 경제협력 분야를 논의했으며, 대한상의 회장 차원에서 SK그룹을 넘어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공급망을 활용한 경제협력 방안을 도출하는 데에도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