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란지교와 반포지교

2023-04-05     박찬순 도서출판 예술의숲 대표
박찬순

매일일보 |  나에게는 친구가 많지 않다.

초등학교 때는 세 개 동네에서 모인 아이들이 한 반에 서른다섯 명 넘었고, 우리 동네에도 동갑내기가 열다섯 명이 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모두 객지로 뿔뿔이 나가 있어 소식이 끊겼다. 그 친구들의 소식은 어쩌다가 풍문으로 전해들을 따름이다. 지금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성남에 사는 친구와 부산에 사는 친구, 그리고 청주에서 가까이 사는 친구가 코로나19 전에는 1년에 네 번 정도 만났었다. 코로나19가 있고 나서 거의 2년 가까이 얼굴도 보지 못하고 다만 전화로 목소리만 들을 뿐이다. 내수에 사는 친구는 1년에 두세 번 만나고, 괴산에 사는 친구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만나고 있다. 주로 내가 괴산으로 찾아간다. 괴산으로 가는 버스 차창으로 계절마다 다양한 풍경이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괴산에 도착을 한다. 괴산으로 가면 소주를 마시고 온다. 잘 가는 삼겹살집으로 가서 삼겹살에 소주 세 병을 마시는 게 전부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친구의 안부도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친구에 대한 고사성어는 많다. 지란지교, 죽마고우, 관포지교, 죽마지우 등 수없이 많은 단어가 있다. 오늘은 지란지교와 관포지교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지란지교의 뜻을 그대로 옮기면 지초와 난초의 사귐을 뜻한다. 지초와 난초는 둘 다 향기로운 꽃으로, 지란지교는 곧 지초와 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 사이의 사귐을 일컫는다.《명심보감(明心寶鑑)》〈교우(交朋友)〉편에 나온다. ‘공자(孔子)는 “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子曰 與善人居环境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선하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악취를 맡지 못하니, 또한 그 냄새에 동화되기 때문이다(與疏于人居环境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 붉은 주사를 가지고 있으면 붉어지고, 검은 옻을 가지고 있으면 검어지게 되니, 군자는 반드시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丹之所藏者赤 漆之所藏者黑 是以 真君子必愼其所與處者焉)”라고 말하였다.’ 지란지교는 여기서 유래한 성어이다. 공자의 말처럼 벗을 사귈 때는 지초와 난초처럼 향기롭고 맑은 사귐을 가지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벗 사이의 변치 않는 사귐, 두터운 사귐을 일컫는 한자성어는 많다. 다음은 관포지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관중과 포숙은 어렸을 적부터 둘도 없는 오랜 친구 사이다. 이 둘은 벼슬길에 올랐으나 본의 아니게 서로 간에 적이 되고 만다. 제나라의 새 군주가 관중을 죽이려 하자 포숙이 말한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훨씬 낫습니다. 제 나라를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하지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시면 관중을 기용하십시오.” 포숙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중용하고 정사를 맡긴다. 재상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능력이 출중했다. 훗날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어렸을 적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였는데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그는 늘 양보했다. 포숙은 내가 실패를 해도 시운을 만나지 못했다며 이해했고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훗날 세상 사람들은 현명한 관중보다 오히려 포숙의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더 칭찬했다고 한다. 이러한 관포와 포숙의 친한 친구 사이가 유래가 되어 사람들은 관포지교라 하게 되었다. 나는 친구와 지란지교도 관포지교로도 될 수 없더라도 그들의 모습을 닮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