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업승계의 활성화를 위한 제언

2024-04-10     김경렬 기자

매일일보  |  가업승계란, 중소기업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상속이나 증여를 통하여 그 기업의 소유권 또는 경영권을 친족에게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중소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0호).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87.7%를 담당하고 있고, 전체 사업체의 99.9%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경제의 핵심이다. 가업승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국가경제가 발전할 수 있고, 고용도 안정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가업승계에 커다란 걸림돌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도한 상속세와 증여세이고, 둘째는 공동분할상속의 원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유류분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는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최고수준으로 높다. 상속, 증여재산이 30억원이 넘으면 50%를 과세한다. 상속증여재산의 절반을 국가가 가져간다는 의미이다. 최고세율이 50%로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높은 나라들도 공제금액을 250억원 이상으로 하거나(미국), 배우자나 직계비속이 아닌 사람(예를 들면 형제자매나 사촌)이 상속을 받을 때에만 최고세율을 적용함으로써(독일) 과세의 합리성을 유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공제액수도 매우 작고, 누가 상속을 받든 30억원이 넘으면 최고세율을 적용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가업상속의 경우에 상속증여세를 감액해주는 혜택을 주고는 있지만, 그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공제액도 낮아서 큰 실효성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을 대폭 낮춰야 하고, 공제금액도 우리 경제규모에 맞게 대폭 상향조정해야 하며, 가업승계의 수단으로 이루어지는 가업승계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한이나 조건을 두지 말고 혜택을 주어야 한다. 한편 공동분할상속의 원칙은 가업의 지배권을 후계자에게 승계시켜 가업을 유지시키는 것에 장애를 초래한다. 상속인이 여러 명인 경우에 후계자 한 명에게 주식을 집중시켜주어야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는데, 공동분할상속과 유류분제도로 인해 이것이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주식신탁이다. 구찌, 페라가모, 프라다 등 명문장수기업들이 수백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주식신탁이다. 가업의 창업자는 주식을 패밀리오피스에 신탁을 해둔다. 그리고 주식의 의결권은 패밀리오피스가 위탁자의 유지(遺志), 신탁계약의 취지, CEO나 이사회와의 협의 등에 기초하여 통일적으로 행사하고, 배당수익은 수익자인 상속인들에게 분배해준다. 이것이 바로 상속이 거듭되더라도 경영권에 문제가 생기지 않아 명문장수기업이 탄생할 수 있는 배경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언대용신탁의 방식을 이용하여 주식신탁을 할 경우의 구조는 이렇다. 경영자가 위탁자가 되어 수탁자에게 주식을 신탁한다. 생전수익자는 위탁자 본인이 되고, 후계자를 사후수익자로 지정한다. 그리고 수탁자에게 의결권행사를 지시하는 의결권행사지시권을 위탁자 내지 수익자에게 유보시킴으로써 경영권을 유지한다. 위탁자 생전에는 위탁자가 의결권행사지시권을 가지고, 사후에는 후계자에게 의결권행사지시권을 부여한다. 의결권과는 별개로 배당수익은 신탁계약에 따라 수탁자가 공동상속인들에게 배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경영권은 후계자에게 안정적으로 이전하면서도 다른 상속인들의 유류분 침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수탁자가 신탁업자일 경우 발행주식 총수의 15%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를 금지시킨 자본시장법의 규정이다(동법 제112조 제3항 제1호). 이 규정이 사실상 주식신탁을 못하게 막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이 규정은 유언대용신탁 방식을 이용한 주식신탁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 아니다. 금산분리원칙에 따라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위탁자가 의결권행사지시권을 유보하고 있는 유언대용신탁에 있어서는 이 규정을 적용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현재 학계나 실무계에서는 이 규정의 폐지 내지 적용제한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적어도 유언대용신탁 방식에 의한 주식신탁에 있어서는 이러한 자본시장법의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하여 2022년 금융위원회 신탁업 혁신방안에서도 가업승계를 위해 유언대용신탁 방식에 의한 주식신탁을 활용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의결권행사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명문장수기업이 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들을 하루빨리 해결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