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銀 ‘블랙홀 한전채’ 대응 진땀
1분기 말 잔액, 전년 동기 比 70% 이상 늘어 신평사 “금융권, 작년 어려웠던 시기는 넘어가”
2023-04-11 김경렬 기자
매일일보 = 김경렬 기자 | 금융권이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자금조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말 채권 대란으로 한전채가 시장 자금을 빨아들면서 금융권 채권시장이 휘청했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에서는 올들어 어려웠던 시기는 다소 누그러졌다고 본다. 하지만 한전채의 발행 물량과 가스공사의 누적 적자를 감안하면, 에너지 채권이 시중은행들 자금을 빨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일 한국전력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한전채 잔액은 68조300억원을 기록했다. 일년 전인 작년 3월 말(39조6200억원) 대비 72% 늘어난 수준이다. 한전채는 1월 3조2000억원, 2월 2조7000억원, 3월 2조1000억원어치 추가 발행됐다. 1분기 발행 물량만 놓고 보더라도 전년동기(6조8700억원)보다 17%가량 더 많았다. 업계에서는 한국전력과 가스공사가 앞으로도 자금조달을 계속 진행해야한다고 보고 있다. 양사의 자금 사정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은 지난해 32조6552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손익 현황은 최근 3년동안 확 달라졌다. 2020년 4조원 이익을 냈다가 2021년 5조8465억원 손실로 돌아서더니 지난해에는 영업손실이 커졌다. 당기순손실 역시 24조4291억원으로 3개년 흐름은 같았다. 특히 작년에는 처리하지 않은 미처리결손금만 7조9566억원이었다. 한전의 전기요금을 통한 원가 회수율은 70% 가량으로 전력구입대금을 사채로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채 발행한도를 고려하면, 올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경우 당장 차질이 빚어지는 셈이다. 가스공사 역시 마찬가지다. 도시가스용(민수용) 원료비는 8조5856억원에 달한다. 2021년 대비 약 5배 늘어났다. 매출채권은 11조3313억원으로 2021년 대비 두 배로 불었다. 매출채권은 외상판매대금으로 현금화까지 시간이 걸린다. 작년 기타채권 유동자산의 미수금은 8060억원으로 2021년 대비 두 배 이상이다. 에너지 채권은 지난해 시중은행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공기업 발행 채권으로 안정적(AAA 등급)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5%대 후반의 고금리 한전채가 과다 공급됐다. 일반적으로 수요가 높으면 금리를 낮춰 발행한다. 그만큼 채권이 향후 오를 것으로 예상한 투자 수요가 몰리기 때문이다. 반면 한전채는 일반적인 채권의 흐름과는 다르다. 계속 자금을 끌어들여야 하는 상황에서 금리 하락을 보존할 수 있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한다. 이 가운데 시중은행은 금융당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 여수신 금리 마진룸을 줄여 공공재 역할을 해야한다는 압박이다. 한전채로 수요가 몰리게 되면 은행은 이에 대항해 채권 금리를 조정해야하는데 당국의 눈치를 봐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얘기다. 다만 신용평가사에서는 작년처럼 어려운 시기는 지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은 올 초 신종자본증권, 선순위채를 통해 발빠르게 자금을 조달했다. 작년 6%대에 달했던 수신금리도 3%후반까지 내려 조달 사정이 편해졌다. 저축은행과 카드사도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문제가 된다면 A급 이하 캐피탈 회사정도라는 입장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금융권 채권 시장은 지난해와 같은 시장 소강상태는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가 된다면 A급 이하 캐피탈 회사일텐데 작년과 같은 폭락보다 점진적인 하락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