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태 칼럼] 면죄부
2024-04-13 매일일보
최근 대한축구협회 이영표, 이동국 부회장과 조원희 사회공헌위원장이 사퇴했다. 대한축구협회가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가담한 의혹 등으로 징계를 받은 축구 선수 및 축구 관계자를 사면하기로 결정한 바 있고, 이 부회장과 조 위원장은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이 같은 결정은 많은 축구 팬들로 하여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스포츠에서 '승부조작'만큼은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경기 결과를 조작하는 대가로 금품이 오가는 승부조작은 정정당당하게 도전한다는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승부조작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한계에 도전하기 위한 스포츠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배신하고, 스포츠 정신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에서도 면죄부를 받기 어렵다.
정치와 스포츠는 영역이 다르지만 정치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하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치와 스포츠를 비유할 때가 있다.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반칙도 전술'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정치인도 본인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필요하면 사악해져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정치에서도 절대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되는 행위가 있다. 바로 민주주의의 본령을 훼손하는 이른바 '공천헌금'과 '매표행위'가 그렇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사람을 잘못 뽑을 수는 있어도 특정 사람이 뽑히도록 금품 같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복수정당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같은 정당의 후보는 전국적으로 같은 기호를 부여하는 등 무소속 후보에 비해 정당 공천은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정당의 공직 후보자 추천제도는 선거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정당의 공천을 대가로 금품이 오가는 행위인 공천헌금은 정치 영역에서 중대 범죄이다.
매표행위는 민주주의가 성숙하게 자리 잡지 못한 곳에서 주로 발생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라고 불리는 관권선거가 있었다. 돈으로 표를 사고파는 행위 역시 민주주의 본령을 훼손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선거 관련 금품 수수 행위를 막기 위해 선거법상 기부행위 시 최대 '50배 과태료'를 부과하는 이유도 정치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공천헌금 의혹을 받는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과 이른바 매표행위 의혹을 받는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의 혐의는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수사 결과와 법원의 최종 판단을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헌법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의 이러한 의혹은 국민들의 정치 불신을 가중시킬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라는 위대한 가치를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