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新 명절 풍속도 - 벌초도 차례상도 이제는 ‘테이크-아웃’
2010-09-25 고은성 기자
[매일일보] 명절풍속도가 급변하고 있다. 그야말로 ‘e-명절’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차례상은 물론 벌초까지도 인터넷 등을 통해 대행해주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 94년부터 벌초대행 서비스를 시작한 농협중앙회에 올해 접수된 벌초대행 묘지는 모두 3만여기에 달하고 있다. 이밖에 민간업체들의 차례상 대행서비스도 급증하고 있어 추석 명절을 맞아 그야말로 반짝특수를 누리고 있다. 현재 인터넷 상에서만 50여개에 달하는 차례상 대행업체가 추석을 맞아 성업중이다. 해마다 명절이면 시간과 비용에 비해 조상을 모시는 일에 부담을 느껴왔던 도시민들의 명절맞이도 이제 본격적인 ‘테이크 아웃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대행업체를 통해 고향에 있는 조상 묘지 벌초를 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묘지를 동영상으로 본다. 추석날 당일에는 아침일찍 차례상 대행업체를 통해 배달된 차례상을 앞에 놓고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낸다. 명절도 이젠 대행시대?
새롭게 변해가고 있는 명절풍속도다.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을 목전에 두고 벌초대행업체, 차례상 대행업체들은 연일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명절풍속도가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의 발달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최모(39?직장인)씨는 지난 주말 고향인 경남 산청의 선산벌초 계획을 접었다. 여느해 보다 짧아진 추석연휴로 인해 미리 벌초를 다녀오는 인파가 많아 주말근무와 맞벌이까지 하고 있는 그로서는 미리 묘소 벌초를 하기엔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씨는 대신 최근 떠오르고 있는 벌초대행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인터넷으로 벌초대행 서비스를 신청, 5만원의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산소 벌초를 마쳤다. 벌초가 깨끗이 끝난 묘소는 역시 인터넷 화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최씨는 또 맞벌이 형편상 차례상 차리기에도 어려움을 겪자 올해에는 어쩔수 없이 차례상 대행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추석 차례상을 차리기 위해 퇴근 이후 장을 보기도 어렵지만 차례상 차리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최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15만원에 20여종의 차례음식을 간단하게 주문했다. 이처럼 벌초를 위해 교통체증을 뚫고 묘소를 찾는 번거로움과 맞벌이 등 생활로 인해 차례상 차리기에 어려움을 겪던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명절문화는 점차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최씨는 추석 당일 차례를 지낸 이후 오랜만에 연휴를 가족들과 도심 근교의 공원에서 보낼 계획을 세워놓기도 했다. 지난 94년부터 벌초대행 서비스를 시행해 온 농협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무려 20~30% 정도 증가한 약 3만기 정도로 관리할 묘소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시행 초기 ‘벌초는 정성’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지난 2005년부터 해마다 30% 정도의 증가세를 보여온 벌초대행 서비스가 이제 새로운 성묘문화의 한 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묘지관리를 대행해주고 있는 산림조합중앙회를 찾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또한 인터넷에는 각 지역별로 벌초를 대행해주는 업체들을 검색할 수 있어 민간대행업체를 통한 벌초대행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벌초대행에 드는 비용은 평균 5~10만원 선. 묘지의 위치와 기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길에서 멀지 않은 묘지라면 1기당 5만원 정도의 비용이면 굳이 묘소를 찾지 않더라도 벌초대행이 가능하다. 이같은 가격은 실제로 교통체증과 초가을 따가운 햇볕 등에 시달리며 고향을 찾아야 하는 많은 이들에게 시간, 비용적인 측면에서 볼때 저렴할 수밖에 없는 것. 이미 지난 설에 화상 세배라는 새로운 설 풍속도를 연출하며 관심을 모았던 인터넷 성묘가 이번 추석에서도 여지없이 그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불경기가 심화된 올 추석에는 직접 찾아가는 성묘보다는 대행서비스 업체를 통한 성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지방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국가유공자 가족과 독거노인들의 벌초를 무료로 대행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해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경남 거창에서 K 벌초대행서비스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7?자영업)씨는 “지난해보다 올해 벌초를 문의하는 고객들이 부쩍 늘었다”라며 “농사일이 바빠지는 시기라서 일손 구하기도 만만치 않아 이번 추석 벌초서비스는 손길이 딸릴 것 같다”라며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K 대행서비스에는 이미 추석을 기준으로 1주일전까지는 벌초대행 서비스 예약이 모두 끝난 상태다. 벌초대행서비스 불티나
이같은 사정은 유독 K 업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남의 H 업체는 올 추석에는 지난해보다 30%정도 벌초대행 주문이 늘어나 하루 평균 100여기 이상의 묘소를 벌초하고 있다. 그러나 주문을 미처 소화해내지 못해 더 이상 인터넷이나 저노하를 통한 예약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벌초대행 서비스 만큼이나 차례상 대행서비스 역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차례상 인터넷 주문은 이미 기본이 돼 버렸다. 대행업체를 이용할 경우 20~30종의 차례 음식을 약 20만원~40만원이면 주문할 수 있다. 이는 지난 설 명절 음식상보다 20% 정도 오른 가격이다. 벌초대행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직접 제사음식을 장만하는데 시간과 경비면에서 효율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차례상 대행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전화나 인터넷으로 제사 품목을 선택해 주문만 하면 필요한 모든 품목들이 추석 전날이나 당일 새벽까지 받아볼 수 있다. 이런 차례상 대행서비스는 주부들의 ‘명정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며 본격적인 명절음식 ‘테이크 아웃’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의 발달은 민족 최대의 명절 풍속도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명절이면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고향집을 찾던 풍속도도 변하고 있다. 명절 선물은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 택배로 배송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선물꾸러미를 든 귀성객들의 모습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올 추석은 연휴기간이 짧은 만큼 교통정체도 만만치 않을것으로 예산된다. 이에 자칫 명절선물이 무더위 차 안에서 상할 염려도 없다는 장점에 ‘빈손 귀향’이 늘고 있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택배사들의 업무는 포화상태를 넘어서고 있다. C 택배 지점장 한모씨는 “해마다 명절때마다 겪는 일이긴 하지만 올 추석은 여느 명절때보다 물량이 넘쳐나고 있다”라며 “이미 직원들의 배달량을 넘어선 것은 물론 배달문의도 폭주하고 있어 전 직원들이 밤새 배달에 매달려야 할 형편”이라고 전했다. 민족의 대이동을 불러오던 고유의 명절 추석 풍경이 세태에 맞게 변형되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찬반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신세대들의 편리한 명절나기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비와 시간, 교통체증 등을 생각하면 이런 대행업이 합리적이긴 하지만 자칫 전통적인 모습이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우려섞인 시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향인 전남 고흥을 찾을 예정인 김모(48?회사원)씨는 “비록 짧은 연휴 교통체증과 뙤약볕 벌초에 시달리긴 하지만 고향에서 가족 친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들이 진정한 민족의 명절에 담겨져 있는 것 아니겠느냐”라며 “벌초대행 등 대행서비스가 편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명절”이라고 말했다. 명절을 보다 편하게 쉴수 있도록 하는 각종 대행서비스는 또 적지 않은 부작용도 안고 있다. 주부들의 부담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차례상 대행서비스는 일부 업체들이 영업신고를 하지 않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원산지 없는 온라인 차례상도 등장해 간편함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생선구이는 물론 손이 많이 가는 한과, 각종 전과 나물류 등 거의 모든 제수음식들을 완벽하게 잦춰놓고 있지만 원산지표시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업체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에 소비자들은 업체측에서 “국산 제수용품을 사용한다”고 하면 믿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지나치게 저렴한 차례상은 한번쯤 원산지 여부를 꼼꼼히 체크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원산지 표기 등 잘 살펴야
민족의 명절 추석. 연이은 불경기와 번거로움 등으로 인해 어느새 추석 풍경에도 ‘테이크 아웃’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세태에 맞게 변화하는 현대식 명절풍경이지만 온 가족이 둘러모여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나누던 우리 민족 고유명절의 참 의미를 다시 되새겨봐야 할 시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