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불똥 튄 금융권...실책은 정부가 하고 총대는 은행이 멘다

정부, 늑장 대응 뒤 경매 유예 등 은행권에 부담 전가 "시간벌기일 뿐"...담보물량 몰린 상호금융 부실 우려

2024-04-19     이광표 기자
전세사기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전세사기로 피해를 입은 임차인 거주 빌라의 경매와 공매 진행을 중단하라는 특단의 지시를 내린 가운데, 금융권이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선 늑장대응을 한 정부의 실책이 은행권에 부담을 전가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금융감독원은 금융권과 함께 전세 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해 거주 주택에 대한 자율적 경매와 매각 유예 조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전세 사기 피해 관련 은행권 실무 방안 논의의 후속 조치로 전세 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에 대해 금융권의 자율적 경매와 더불어 6개월 이상 매각 유예 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19일 밝혔다. 이를 위해 금감원은 국토교통부로부터 전세 사기 피해 주택의 주소를 입수해 은행, 상호금융 등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는 금융기관에 송부할 예정이다. 아울러 금융기관이 제삼자에 이미 채권을 매각한 경우에는 매각 금융기관이 매입기관에 경매 유예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런 금융기관의 자율적인 경매 및 매각 유예 조치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금융업권에 비조치 의견서를 이날 발급할 예정이다. 다만, 문제는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주택이 경매로 넘어갈 경우 경매 일정을 중단해 달라고 금융회사 등에 요청한 것을 두고 협조 요청 아닌 사실상 압박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정작 전세사기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이 잇따른 사태의 책임은 정부에 있는데 은행권이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만 맡는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경매 중단 자체가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는 데다 근본적인 구제책은 아닌 만큼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가 해당 주택을 우선매수할 수 있게 해주거나 피해자 채무를 조정해주는 방법, 정부가 피해 주택을 매입하는 안도 거론되지만 재원 문제와 형평성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부가 강제로 경매를 중단시킬 경우 채권자 권리를 침해하고 기존 추심제도를 무력화한다는 논란도 나온다. 문제는 민간 금융사가 압류한 물건의 경매 중단 여부다. 빌라를 담보로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한 금융사는 대부분 1금융권(시중은행)이 아닌 2금융권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 전세 사기 피해와 관련한 주택들은 시중은행이 잘 취급하지 않는 담보물이 많아 은행보다는 2금융권 물량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저축은행권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보통 개인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은 없는 편이어서 2금융권 중에서도 저축은행보다는 상호금융 쪽에 해당 물량이 몰려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상호금융이 압류한 물건의 경매를 중단하게 되면 이들이 받는 피해도 상당할 것으로 우려된다. 정당한 재산권 행사인 담보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면 연체율이나 고정이하여신 비율 등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동조합 형태로 구성된 농협이나 수협·신협 등에 정부가 경매를 유예해달라고 압력을 넣을 경우 시장 논리를 무너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상호금융 한 관계자는 “현재 정부로부터 경매 연기 요청은 없는데, 자체적으로 전세 사기 관련 대출 등의 사태를 파악하는 중”이라며 “구체적인 경매 연기 대상 등에 대한 요청이 오면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제2금융권의 경우 빌라를 담보로 한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한 경우가 많아 경매중단이 이뤄질 경우 이 영향이 상호금융권까지 커질 수 있는 상태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경매보류를 하면 제2금융권까지 따라올 수 밖에 없지 않냐”며 “어디까지를 전세사기로 보고, 어느 선까지 지원책을 할 건지 등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추후 파생되는 문제 등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은 전세사기 피해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고 있는데 입법 기능이 제대로 발현되고 있지 못한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월 30일 '깡통·전세사기 구제법(주택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 및 주거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도 임차인 보증금 보호를 위해 주택이 경매 등으로 매각되는 경우 재산세 등 해당 재산에 부과된 지방세보다 임차인의 임차보증금에 우선 변제토록 하는 지방세기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 피해 문제와 관련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범정부적으로 피해자 추가 지원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앞으로 금융위·금감원은 범정부 논의에 적극 참여해 피해자 지원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