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메기로 핀테크 키운다는 금융당국...업계 "법제도 정비부터"

핀테크 메기론 부상했지만 실상은 유니콘 단 2곳뿐 글로벌 시장 비해 韓 성장 더뎌..."체급부터 키워야"

2024-04-24     이광표 기자
김소영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윤석열 정부가 금융산업의 과점 체제를 깨고 경쟁 촉진을 주문하면서 ‘핀테크 메기론’이 부상했지만 규제 절벽에 핀테크의 성장이 더뎌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은행이 과점체계 아래 예대마진에만 안주하면서 금융 소비자의 이익이 저하됐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핀테크에 경쟁 촉진제 역할을 주문한 바 있다. 하지만 핀테크 업체들이 은행과 경쟁이 가능한 궤도를 만드는 데에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업계의 불만도 쌓여가고 있다.

빅테크라 불리는 네이버, 카카오도 결제·송금 분야를 빼면 금융 영역에서 사업적 성과가 미미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시적으로 규제를 유예해 주는 금융규제 샌드박스에만 의지해 사업을 펼쳐야 하다보니 사업의 일관성 측면에서 핀테크의 성장판이 닫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24일 한국핀테크지원센터에 따르면 국내 핀테크 기업은 2021년 기준 550여 개로 집계됐다. 2015년 205개에서 6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 지원을 본격화하고, 글로벌 벤처 생태계 내에서 핀테크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면서 국내 핀테크 산업은 단기간에 급격한 양적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해외 핀테크 기업들이 최근 4~5년간 차근차근 스케일업 과정을 밟아 글로벌 유니콘(기업가치를 1조원 이상으로 평가받는 비상장 기업)으로 성장한 것과 달리 국내 핀테크 기업들은 질적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까지 시드 스테이지 투자를 받았던 국내 핀테크 기업의 단 23.9%만이 2022년 9월 기준 얼리 스테이지(시리즈A·B)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동남아 핀테크 기업의 39.9%, 50%가 각각 얼리 스테이지로 진입한 것과 비교하면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성장 속도가 더딘 것이 사실이다. 글로벌 유니콘 기업(1191개) 중 핀테크 업체는 약 25%(900개)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유망한 산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국내 핀테크 기업 중 유니콘은 몇 년째 두나무(업비트)와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단 2개뿐이다. 국내 핀테크 기업의 스케일업을 위한 정책 지원이 시급한 이유다. 정부도 핀테크 산업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금융 당국은 핀테크 규제환경 개선, 금융규제 샌드박스 시행, 오픈뱅킹 전면 시행, 마이데이터 서비스 도입 등으로 핀테크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에 대해 규제를 유예해주고 서비스 출시를 돕는 제도로, 플랫폼 기반 금융 서비스의 효용을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237건의 혁신금융서비스가 지정됐고, 156개의 서비스가 규제 특례를 적용받아 출시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금융규제 샌드박스만으로 은행권에 대적할 메기를 키울 순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금융권 한 전문가는 “규제샌드박스는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실험할 수 있는 제도이지, 이것을 가지고 금융권 메기를 만든다는 건 (실현 불가능한) 너무 큰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 핀테크 업체들의 금융 사업 매출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해 4분기 디지털금융 관련 매출은 154억원으로, 전체 핀테크 사업에서 4.8%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2019년부터 시행된 금융규제 샌드박스는 핀테크가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게 한 좋은 토양이 됐지만, 한시적인 규제 유예에 기대어 사업을 지속해나가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 서비스로 지정되더라도 각종 제약이 따라붙는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최근에는 예·적금 비교추천서비스를 허용하면서, 은행이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수 있는 상품 비중을 제한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은행은 전년도 예·적금 신규모집액의 5% 이내, 저축은행과 신협은 3% 이내만 플랫폼을 통해 판매할 수 있다. 플랫폼을 통해 예·적금을 비교하고 가입하려는 수요가 많아도, “금융시장 안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판매 수량을 한정해 확산을 제어한 것이다. 업계에선 디지털금융을 위한 기본법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산업인 핀테크를 규율한 마땅한 법이 없기 때문에 은행법, 보험업법, 여신전문금융업법 등 전통 금융 규제를 들이대는 일이 빈번해 혁신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전금법이 디지털 금융의 기본법 역할을 해야 하지만 핀테크, 빅테크의 출현에 따른 변화를 제도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20년 11월 전금법 전면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현재까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핀테크 같이 혁신적인 신생 산업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규제 만들지 않는 것이 좋지만, 우리나라는 포지티브(할 수 있는 것만 명시) 방식의 법체계라 합리적인 규율이 없으면 오히려 산업 활성화가 어렵다”면서 “이런 경우 규제법보다 디지털금융 육성법을 만들어 기업들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