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銀 상환유예 예상부실 얼마나 크길래…당국 “충당금 2배로 늘려야”

"부실 지표 심상찮다"…5대 은행 충당금 더 쌓는다 "3년간 금융지원 착시"...당국 자본확충 압박 커져

2024-04-25     이광표 기자
정부와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은행 산업의 과점 피해를 지적하면서 충당금 적립 확대를 주문한 가운데 주요 은행들이 1분기 실적에 반영할 충당금을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늘린다는 방침이다.
 
앞서 지난 2월 윤 대통령은 “수익이 좋은 시기에 은행이 충당금을 충분히 쌓고 이를 통해 어려운 시기에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고 은행권에 요청한 바 있다.
 
금융당국도 은행권을 대상으로 “충당금 산정 과정에서 약 3년에 걸친 대출 원금·이자 유예 상황과 악화가 예상되는 미래 경기를 보수적으로 반영해 달라”고 권고한 상황이다. 은행들도 최근들어 중소기업·자영업 등 취약 차주의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만큼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는 분위기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이달 최근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재무·리스크 담당 임원(부행장급)과 금융감독원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충당금을 주제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금감원 관계자들은 은행 충당금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적정 수준보다 적다고 지적했다. 우선 코로나19 사태 이후 3년간 지속돼 온 대출 연장·이자 유예 등 금융지원에 따른 착시 현상 문제가 나왔다.
 
현재 각 은행은 부도율(PD·1년 내 해당 여신이 부도 처리될 가능성 예측치)과 부도 시 손실률(LGD·부도 발생 시 해당 여신 중에서 회수하지 못하고 손실 처리되는 비율) 등을 기반으로 적정 충당금 적립 규모를 산출한다. 이 경우 보통 과거 10년 간의 PD·LGD 관측 데이터가 활용된다.
 
그러나 최근 3년(2020∼2022년) 동안 은행이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등에 계속 대출 원금 상환과 이자 납부를 연기해 줘 연체율이나 부도율 등의 부실 지표가 실제 상황보다 낮게 나타나는 만큼, 단순히 최근 10년 데이터를 사용하면 충당금이 지나치게 적게 책정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또 금감원은 경기가 갈수록 악화되는 흐름을 반영해 충당금 산정 과정에서 PD 등을 보수적으로 추정할 필요가 있다고 은행에 요청했다. 특히 최근 중소기업 연체율이 상승추세인데도, 오히려 중소기업에 대한 충당금 적립률은 대기업보다 낮다고 짚으면서 중소기업 등 취약차주에 대한 충분한 충당금 적립을 수차례 강조했다.
 
당국은 올 1분기 위와 같이 대출 연장 등 금융지원 특수성과 미래 경기 전망 등을 반영해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충당금을 많이 확보하도록 요청했다. 2분기부터는 충당금 관련 규정을 개정할 방침이다.
  
주요 은행들은 이같은 금감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당장 이번 주에 발표할 1분기 실적에 원래 계획보다 많은 충당금을 반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보통 은행권 신규 충당금 적립액은 상대적으로 연초에 적고 연말로 갈수록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는데 올해는 이례적으로 1분기부터 상당 규모의 충당금을 확보하고 출발하게 되는 셈이다. 당국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만큼 은행들도 과감히 충당금을 확대해 적립 규모가 지난해 1분기의 두 배 이상에 이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5대 금융지주와 은행은 작년 연간 각 5조9368억 원과 3조2342억 원의 대손충당금을 새로 적립했다. 작년 말 기준 5대 금융지주와 은행의 충당금 잔액은 각 13조7608억 원과 8조7024억 원에 달한다.
 
업계 전망대로 올 1분기 충당금이 지난해 동기 대비 두 배로 늘어날 경우 금융지주에서는 최소 약 1조6000억 원, 은행에서는 약 6000억 원이 새로 적립될 전망이다.
 
은행권 내부에서도 현 시점에선 충당금을 충분히 확보해 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체율 등 건전성 지표가 악화되고 있고, 경기 악화로 인해 중소기업·자영업자·다중채무자 등 취약 대출자의 부실 가능성이 갈수록 커질 위험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날 금감원이 발표한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에 2월말 기준 국내은행 대출 연체울은 0.36%까지 오르며 2년 반 만에 최고수준으로 치솟았다. 

아울러 대통령까지 나서 이자 장사를 통해 낸 이익으로 은행 임직원들끼리 ‘돈 잔치’를 한다고 비판한 만큼, 최대한 충당금을 늘려 스스로 1분기 순이익을 줄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충당금 확대를 둘러싸고 일각에서 제기된 ‘배임’ 가능성에 대해서도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은행권 입장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법률 자문 등을 거쳐 미래 경기 악화 등을 반영한 충당금 증액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