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여신 늘린 시중銀 ‘건전성 적신호’…부실채권 절반이 제조업서 발생

5대 은행 기업여신 급증 속 부실 규모 2조 넘어서 한은 총재 만난 은행장들 "중소기업 부도율 상당"

2024-04-27     이광표 기자
시중은행들의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은행들이 중소기업을 상대하다 보니 생각보다 어려운 곳들이 많더라. 부도율이 상당한 수준이다.” 지난 24일 18개 은행장들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 꺼내놓은 하소연이다.

실제 기업 대출에 힘입어 큰 폭의 여신성장을 일궜던 국내 은행들이 '유탄'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5대 은행을 기준으로 해도 기업 대출에서 발생한 부실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선 데다 올해 들어 신규 연체도 늘어나며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27일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경영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기업 대출 부실채권(고정이하여신·NPL) 잔액은 2조4582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부실채권(3조4762억원)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부실률은 0.27%다. 부실채권의 절반 가까이가 제조업에서 발생했다. 전체 기업 대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4.74%로 높은 만큼 부실률도 제조업이 높았다. 제조업의 부실률은 0.44%로 서비스업(0.22%)의 두 배를 웃돈다. 부실채권 잔액은 전년(2조6280억원) 대비해선 6.48%(1698억원) 줄었으나 만기 연장·상환유예 조치에 따른 착시효과에 가려져 안심하긴 이르다. 올해 들어선 착시효과에 가려진 잠재 부실도 꿈틀대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반은행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지난 1월 0.4%로 2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금융감독원에 의하면 2월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47%로 1월 대비 0.08%포인트(p) 올랐다. 지난해 5대 은행은 가계대출의 부진을 기업 대출로 상쇄해왔지만 기업 대출 금리가 오르면서 연체율과 부실률이 동반 상승했다. 이에 은행권에서도 부실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년 사이 기업대출 금리가 3%대에서 6%대까지 두 배가 뛰었다"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올해부터 부실이 많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대 은행의 총여신은 1547조7549억원으로 전년 대비 3.90%(60조4357조원) 증가했다. 이 중 가계 대출은 5000억원 가까이 감소했으나, 기업대출은 84조5000억원 불어났다. 은행권의 충당금 적립 부담도 커졌다. 지난해 5대 은행은 기업 대출에 대한 충당금은 67조498억원이다. 이에 감독 당국은 착시 효과로 인한 잠재 부실을 지적하며 최근 국내 은행에 기업 대출에 대한 추가 충당금 적립을 주문했고, 은행들은 올해 1분기부터 전 분기 대비 2배 이상 쌓기로 했다. 한편 지난 24일,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은행장들을 불러모아 두 차례 기준금리를 동결한 데 대한 배경설명에 직접 나섰다. 이 총재는 최근 경상수지 적자 등 경기 하강 신호가 뚜렷해짐에 따라, 금리를 더 올리기보다는 동결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한은의 입장을 직접 설명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 자리에서 은행장들은 이 총재와 대출을 제공하는 중소기업의 부도율이 점점 증가하는 등 심각한 국내 기업대출 상황에 대해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소기업계에서도 대출금리 상승으로 인한 경영난을 호소하며 은행들의 고통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의 5% 이상 고금리 대출 비중이 2013년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아지는 등 이자 부담으로 인한 경영상 고통을 금융권도 분담해달라고 촉구한 것이다. 실제 대기업에 비해 경제환경 변화에 대응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고금리 타격에 별다른 대책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중기중앙회가 2월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대출금리 상승 대처와 관련해 '별다른 대응 방법이 없다'는 응답이 59.0%로 가장 많았다. '일부 대응하고 있지만 불충분하다'는 응답은 31.3%로 뒤를 이었다. 응답한 중소기업 10곳 중 9곳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자금 확보가 어려운 것은 물론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자 비용까지 급증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금융권은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금리를 즉시 인하해야 하며, 금융당국은 중소기업·소상공인 의견을 수렴해 예대금리차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하고 금융권이 성실히 이행하도록 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은은 오는 30일 만료 예정이던 대출 적격담보증권, 차액결제이행용 담보증권 및 공개시장운영 PR매매 대상증권의 범위 확대 방침을 7월 31일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또 현재 시중은행 45%, 지방은행 60%로 차등 적용되고 있던 중소기업 대출비율(중기비율)을 50%로 일원화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