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기업 중심 ‘친환경 산업’…기업간 빈부격차 가중

歐, 대기업 협력업체에도 친환경 강조 政, 대기업 중심의 배터리·전기차·수소 분야 지원 강화 歐수출의존도 높은 中企, 체질 개선할 시간 부족

2023-05-01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글로벌 사회가 기업들의 친환경 실천을 의무화하고 있다. 변화에 적극 대응 가능한 대기업과 달리,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어 친환경이 기업 간 빈부격차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 등 선진국이 대기업의 친환경 의무를 강화하면서,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중소기업까지 이를 따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국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문은 ‘환경’이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기업에게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급망 실사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제재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공급망 ESG 실사법이 올해 독일에서부터 시행되고 내년부터 EU 전체로 확대되면서 국내외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협력업체에 ESG 실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실사 결과에 따라 고객사와의 거래나 계약이 중단될 수 있어 중소기업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유럽의 규제가 코앞인데, 관련 정책이 이제야 가동돼 체질 개선 준비 기간이 짧다는 것이 문제로 꼽힌다. 경영 도입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빈부격차가 ESG 경영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정치권은 글로벌 친환경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배터리, 전기차, 수소 분야를 낙점하고, 관련 분야에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6일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해당 분야의 미래 핵심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3대 주력기술 초격차 R&D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지난 3월에는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반도체·이차전지·백신·디스플레이·수소·전기차·자율주행차 등 국가전략산업의 설비투자 시 세액공제율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홍영표 의원이 국내 자동차산업의 전기차 생산 전환을 촉진하기 위한 ‘전기차 지원 3법’이 발의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부진 중인 대기업계를 지원해, 산업계 전반의 낙수를 기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에 따라 하청 중소기업에도 혜택이 미칠 것으로 보이나, 업계는 실질적 대안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대기업의 주력 품목이며, 해당 분야에 납품되는 소부장은 저렴한 중국산에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계가 아직 친환경 경영으로 전환할 역량을 갖추지 못 한 것도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지난해 기술보증기금(KIBO)이 중소기업을 대상(종사자수 10인 이상의 기업 3724개)으로 저탄소・친환경 경영 관련 실태조사 결과, 탄소중립 준비가 됐다고 응답한 업체는 3.2% 뿐이었다. 가전제품 프레임 하청업체 B사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이 탄소를 얼마나 발생시킨다고 이 난리인지 모르겠다. 실제 탄소 배출량은 가축 사육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데, EU는 환경을 지킨다는 착각에 빠져 애꿎은 제조 기업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근 베트남과 중동 시장이 대체국으로 각광 받고 있지만 중소기업계는 유럽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형국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의하면, 지난해 3월 기준 유럽 국가 중 수출 비중이 가장 큰 곳은 독일이다. 순위로 보면 13위이며, 수출 금액은 약 8억 9000달러로 인도네시아와 튀르키예에 비하면 큰 수익이 나오지 않는 편이다. 다만 영국을 포함해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연합 소속 국가를 합하면 수출 비중은 10~11%에 달하며, 이는 3위인 베트남(8.4%), 4위 일본(4.4%)보다도 높다. 유럽은 EU를 통해 사실상 한 국가처럼 운영되므로, EU의 친환경 기조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국내 3순위 수출국을 잃게 되는 셈이다. 또 국내 중소기업들은 아직 고품질의 유럽산 제조 장비, 부품 의존도가 높다. 의료기기 개발 업체 직원 A씨는 “자사의 레이저 기기에 활용되는 렌즈나 정밀 부품은 대부분 독일산”이라며 “유럽과의 교역이 제한될 경우, 제조 기반 중소기업은 당장 물건을 만들 수단이 없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