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활한 기업승계와 신탁활용 그리고 제언

2024-05-08     김경렬 기자
배정식

매일일보 | 2022년 10월 보도된 신탁업 혁신 방안은 관련 업계의 큰 관심을 받았다.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2017년부터 논의되어 오던 개인의 종합재산관리 수요와 기업 등의 적극적 재산활용을 통한 자금조달 및 원활한 기업승계지원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상당한 수준의 신탁업 관련 제도 정비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금전은 물론 주식·주택 등 다양한 재산을 종합 관리하고, 의료·법률·세무 등 비금융 서비스도 전문기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여, 신탁의 종합 서비스 플랫폼 기능이 강화되면 다양한 업권간 협업을 통해 편리하고 고도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 미술품 등에 대한 조각투자 등 다양한 투자활동 지원과 고령층을 위한 후견·치매신탁을 통하여 안전한 자산지킴이 역할도 강화될 수 있다. 의료법인, 법무법인 등의 전문기관 신탁상담을 통해 의료지원부터 노후자산관리와 후견, 상속 등 우리가 평소 어렵고 복잡하게 느끼던 고민들을 좀 더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개인재산 종합관리 또는 고령층의 안전한 재산관리, 후견신탁 등에 못지 않게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가 바로 중소기업의 승계라고 생각된다. 신탁은 재산을 보유한 소유자가 인지능력에 문제가 없는 건강한 시기에 자신이 원하는 상속설계를 디자인하여, 생전부터 적극적인 재산관리와 사후에도 원하는 방식으로 자산이 승계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신탁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경영자는 주식을 신탁하여 기업승계에 적합한 의결권 행사와 배당절차를 정해 놓을 수 있다. 기업승계와 관련하여 신탁은 유언대용신탁을 통한 상속지원 뿐 아니라 수익자연속신탁제도를 통해 자녀, 손주로 이어지는 승계계획을 실현할 수 있다. 물론 기업의 승계에 관해서는 사회저변의 부정적인 인식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021년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경영자는 ‘창업주의 기업가정신 계승을 통한 기업의 지속발전 추구’를 목적으로 가업승계의 계획을 하고 있지만 일반 국민은 가업승계를 ‘불법․편법적 상속’, ‘노력 없는 부의 대물림’ 등과 같이 부정적으로 인식이 크다는 것이다. 설문에 응한 기업의 77.7%가 ‘가업승계의 중요성’에 동의하고 있으며, 응답 기업의 60.7%가 ‘가업승계 계획’을 갖고 있음에도 승계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게된다.   ■ 기업승계 지원을 위한 세법개선 2022년 개정세법에는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던 제도개선이 내용이 반영되거나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 우선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이 중소기업 및 매출액 5000억원 미만의 중견기업으로 확대 되었다. 사후관리 준수기간도 7년에서 5년으로 완화되었다. 기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역시 가업상속공제와 동등하게 공제한도가 상향되고 사후관리 요건도 완화되었다. 기업승계에 따른 상속세 연부연납특례 확대와 상속증여세 납부유예제도도 신설되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2021년 중소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승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부담으로 76.3%가 ‘막대한 조세’로 응답한 현실과 중소기업이 주된 기업승계 방식으로 일부증여 후 상속을 가장 선호한다는 요구 등이 반영된 결과이다. 문제는 아직 그 활용이 빈약하다는 점이다. 국세통계연보(2021)를 살펴보면 2015년 ~ 2020년의 연평균 가업상속공제 이용 건수는 89건, 공제금액은 2279억 원이며, 연평균 기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의 활용은 163건, 공제금액은 2401억 원에 불과하다. 또한 실무 현장에서 현 세제의 활용은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기업가들도 적지 않았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구현할 수 있는 세제는 너무나 중요하지만, 과연 세제개선만으로 조만간 우리가 직면할 기업승계의 고민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까?   ■ 기업승계를 위한 다양한 제도활용의 필요성 중소기업중앙회의 ‘연도별 중소기업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 경영자 중 ‘60세 이상’의 비중이 2018년 23.2%에서 2020년에는 30.7%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적절한 승계대비가 필요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 기업수의 99%와 전체 근로자의 82.7%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승계 실패는 중대한 경제적 손실을 발생할 수 있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통한 경제활성화 그리고 지속적인 고용창출을 위한 제도개선은 비단 세제에만 국한되는 것인가. 기업승계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 그리고 법제와 신탁제도 등 다양한 관점에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 초고령화사회인 일본은 이미 2008년 ‘중소기업 경영승계의 원활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세제를 비롯한 여러 정책을 수립하여 사업승계에 대한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일본의 기업승계에 관한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2000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약 80만개의 기업이 감소하였는데 문제는 폐업 예정인 중소기업의 약 30%가 동종업계의 기업보다 실적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수기업(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 약 3000개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기업성과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고령화 또는 후계자의 부재, 유류분제도 등 다양한 관점에서 기업의 승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 원활한 기업승계와 신탁활용 그리고 제언 금번 신탁제도 개선안에는 자본시장법상 신탁된 주식의 의결권 행사가 15% 제한 규정을 개선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기업승계 활용에 신탁 활용이 필요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신탁의 독립성을 통한 재산의 보호기능과 수익자연속신탁을 통한 여러 세대에 걸친 승계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신탁의 전환기능을 통해 신탁재산은 다양한 목적의 수익권으로 분리됨으로써 특정 자녀에게 기업이 승계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다른 자녀들의 문제제기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의결권의 행사방법과 배당권의 지급방법을 신탁계약에 효과적으로 반영하여 기업의 승계와 고용창출의 기회를 늘려갈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세제개편안에 포함된 많은 개선안은 기업승계를 위해 유연한 구조설계가 가능한 신탁제도와의 결합가능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승계관련 세제혜택을 위한 주식보유 요건은 기업승계를 위해 단순히 관리목적의 신탁에 대한 진행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활한 기업승계를 위해서는 다양한 제도적 결합이 이루어질 때 효율적인 승계실행과 계획 수립이 이루어질 것이다. 금번 제도개선에서 관련 규정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나 올바른 법제 개선을 고대하는 이유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두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 세제는 기업승계 관련 세제혜택을 가업의 승계로 국한하고 있다. 가업이라는 용어로 인한 기업승계를 위한 세제완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업승계와 관련하여 유일한 후계자인 외아들이 유고가 발생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다른 자녀가 있다면 후계자 선정과 교육을 통해 기업승계를 추진하겠으나 변고가 발생한 자녀가 유일한 자녀라면 기업승계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이제는 가족구조를 감안한 후계자 요건 완화의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