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이 금리 인상 중단을 시사하면서 끈질기게 밟고 있던 긴축 페달에서 발을 떼는 모습이다.
미국은 은행권 불안, 우리나라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 등 금융안정을 해칠 요인이 도사린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는 거리를 둘 거라는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관심은 양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다. 양국 중앙은행 총재가 입을 모아 연내 금리 인하에 선을 그었지만, 시장에서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은은 1월 기준금리를 연 3.5%로 올린 후 석 달 넘게 동결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연준은 지난 2∼3일 열린 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4.75∼5.00%에서 5.00∼5.25%로 0.25%포인트 인상해 한미 금리 역전폭은 1.75%포인트로 역대 최대치로 벌어졌다.
시장은 미국이 이번을 끝으로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본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번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 종료를 명시적으로 입에 담지 않았다. 오히려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일축하는 등 매파(긴축 선호) 발언을 이어갔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그렇게 빨리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 FOMC의 견해"라며 "물가를 목표치까지 맞추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예측이 대략적으로 옳다면 금리를 내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고 말했다. 이는 긴축적인 금융 여건 유지를 위해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사전 차단하려는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미간 금리 역전 폭이 커진 데다 경상수지 적자, 반도체 경기 악화 등 우리나라 펀더멘털 약화 등을 고려하면 외국인 자본 유출 우려, 원화 약세 등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하지만 시장에선 미국 금리 인상 종료에 더 무게를 둔 데다,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인식에 외국인 주식·채권 매수 등이 이뤄지는 등 자본 유입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일 1322.8원에 마감해 지난 달 20일(1322.8원) 이후 9거래일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금리를 먼저 내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2015~2016년 미국은 금리 인상 사이클이었지만 우리나라는 국내 경제 상황에 맞춰 금리를 내린 적 있다”며 “연준은 내년 초에나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은은 올 10월께 금리를 먼저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하반기 금리 인하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 부동산 PF 만기도래가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부실 위험이 터지지 않는 한, 한은이 먼저 금리 인하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연준도 내년 1분기쯤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은도 내년 1분기 정도에 인하할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3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서 CNBC와 인터뷰를 통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7%로 둔화됐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기준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근원 물가 상승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 논의는 아직 이르다는 설명이다.
실제 수요측 영향을 받는 근원물가가 높은 수준에서 제대로 꺾이지 않으면서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금리 인상 종료를 공식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4월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월대비 0.5% 상승하면서 예상치(0.3%)를 상회했고, 실업률은 3.4%로 54년 만에 가장 낮았다. 근원물가도 4% 중반대다. 우리나라도 근원물가는 석 달째 4%를 기록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위치라고 언급했던 호주의 경우 금리 인상 중단을 시사했다가 1분기 물가상승률이 7%를 기록하자 깜짝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내부 분위기도 아직은 신중하다. 지난달 한은 금통위에서는 '인하 분위기 조성'보다 '추가 인상 고려'에 관한 발언이 우세하기도 했다. 당시 한 금통위원은 "구조적 요인에 따른 저성장을 경기 요인과 분리하지 않고 완화적 통화정책을 집행할 경우 레버리지 확대와 자산가격 버블로 특징짓는 금융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시장 신용위기가 변수가 될 수 있다. 한미 양국 모두 장기간 금리 동결기가 유력해지면서 신용 위험 발발 등 금융 불안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선 은행권 부실이 줄줄이 터지면서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질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이 경우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빨라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하한다면 그 배경은 ‘물가 안정’ 목표 달성보다는, 부동산 PF부실화 등 금융불안 확산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앞서 이창용 총재는 “금융안정 때문에 금리를 올리는 것에 제약을 받는, 소위 ‘금융우위’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되고, 또 그렇게 하지 않도록 다양한 툴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