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기만 한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법

尹,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책 마련 지시 후 한달 네 번째 피해자 사망에도 특별법 제정 놓고 정치싸움만

2023-05-15     권영현 기자

매일일보 = 권영현 기자  |  전세사기 피해에 따른 극단적 사태가 잇따르자 윤석열 대통령이 피해자 구제대책을 마련하라 지시한 지 한달이 지난 시점에도 관련 법 마련은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요건 및 보상범위 등을 놓고 정치권의 소모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달 말까지 관련 법을 처리한다는 입장이나, 워낙 이견차가 커 피해자들만 발을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 8일 서울 양천구의 한 빌라에서 '빌라왕' 사건 피해자인 30대 여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정황이 없다고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에 전 재산을 쏟아붓다시피 한 피해자들은 남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서울 강서구 전세사기 피해자 B씨는 “소식을 듣자마자 너무 막막하고 가슴이 아파 쉴 새 없이 울기만 했다”며 “피해자들이 죽어야 그때만 잠깐 관심을 주는 척하고 무엇 하나 바뀌지 않고 있는데 뭘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지난 4월 17일 빌라왕에 의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세 번째 사망한 직후 윤 대통령이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지 3주 만에 피해자가 발생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정재 의원이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고 야당에선 조오섭 민주당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특별법안을 연이어 대표발의했다.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이 지난 1일과 3일, 10일 등 세 차례에 걸쳐 법안을 심사했으나, 의견차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망자 발생 소식에도 여야는 특별법 제정을 놓고 정치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날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여러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어 정부에서 그 제안을 검토해야 해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SNS를 통해 “야당이 제시한 보증금 반환 대책부터 즉각 수용하라”며 “야당의 대안을 거부한 채 합의를 지연시키는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들은 극심한 불안과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여권은 야당과 피해자들의 의견인 '선(先) 구제 후(後) 정산' 방식을 수용할 경우 개인적 피해에 일일이 국민혈세를 투입시킨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고, 다른 범죄 피해자와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여야는 오는 16일 국토위 법안소위에서 심사를 재개해 특별법에 대한 논의를 거쳐 25일 본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상임위 차원에서 합의가 되지 않으면 원내지도부 간 협상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선 양측의 이견을 좁히지 못해 민주당의 단독 처리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 만큼 특별법 제정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장기화될 경우 추가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 피해자 단체는 16일 국회 본청 앞에서 제대로 된 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대책위는 포괄적인 피해자 요건과 보증금 채권매입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