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 와중에 전세사기 사각지대 발생, 추가피해 커질 듯

인천 ‘건축왕’ 딸 회생신청, 근생빌라 피해자는 사각지대 특별법 적용 대상 돼도 대출·경매 지원 불투명

2024-05-15     나광국 기자
서울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인천 전세사기 주범인 이른바 ‘건축왕’ 딸은 회생신청으로 구제받는데 상가를 주거용으로 개조해 사용하는 근생빌라에 거주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은 없어 허망할 뿐.”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을 위해 내놓은 전세사기 특별법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특별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회생11부(부장판사 오병희)는 지난 2일 A(34)씨에게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A씨는 지난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 사이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533가구의 전세 보증금 43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건축왕' B씨의 딸이다. 포괄적 금지명령이란 회생절차 개시 신청에 대한 결정이 있을 때까지 강제집행 등 금지를 명령하는 것으로 채권자들의 강제집행·가압류경매 등의 절차가 모두 중단된다. 이후 법원이 회생절차를 개시하더라도 절차가 끝날 때 까지 경매 등은 재개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들은 “건축왕의 딸이 시간을 끌어서 여론이 잠재우고 본인 재산을 지키려한다”고 비판했다.

한 전세사기 피해자는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사항들이 빠져있는 특별법은 아직 통과조차 되지 않아서 여기저기서 여전히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는데 사기꾼들은 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며 “근생빌라에 살고 있다가 전세사기를 당한 여러 피해자들의 경우 특별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피해지원 사각지대에 놓여 더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사는 최모(33·남)씨는 빌라·오피스텔 1000여채를 소유하다가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임대사업자 김모(42) 씨로 인한 피해자다. 그는 지난 2020년 1억6000만원에 전세를 얻었다. 해당 건물은 겉보기에는 멀쩡한 6층짜리 빌라의 주택이었다. 하지만 계약을 하고 한 달이 안 돼 집주인은 이른바 ‘빌라왕’으로 바뀌었다. 만기 때 보증금을 내달라는 최씨의 애타는 전화에도 김씨는 “얼마에 사실건데요?”라고 답했다. 여기에 법률 상담 중 해당 거주지가 근린생활시설에 ‘원룸’ 탈을 씌운 불법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최씨는 등기부등본을 봐서는 알 수 없고 건축물대장까지 떼어보니 주거용이 아닌 근린생활시설로 등록된 것을 확인했다며 계약 당시 중개사에게 이러한 사실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최씨처럼 ‘근생빌라’로 불리는 불법 건축물에 들어갔다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건물주들은 1~2층을 근린생활시설로 등록해놓고 주거용으로 불법 개조하는 경우가 많고, 같은 빌라 건물이어도 외관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렵다. 이들의 경우 불법 건축물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각종 전세사기 지원 대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근린생활시설 피해자들은 저리 대출 및 대환 대출과 경락 자금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불투명하다. 또 근생빌라의 경우 경매시장에서 새 주인을 찾기도 어렵다. 적법한 빌라도 주인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이행 강제금까지 감수해 낙찰하려는 사람이 드물어서다. 근생빌라는 공공매입 여부도 불투명하다. 집행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규상 불법건축물을 매입임대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기준완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매입을 할 수 없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근생빌라 거주자들은 특별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에서 지원하는 대출 대상에서도 제외돼 똑같이 전세사기를 당했어도 이들에 대한 대책은 없다시피 하다”며 “특별법 적용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대출·경매 지원이 불투명해 피해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