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예상대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이유로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했지만, 사실상 대한의사협회 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준 셈이다. 당장 간호협회는 준법 투쟁 등 단체 행동 논의에 들어가며 상황은 또 다른 갈등으로 옮겨가고 있다. 갈등을 이유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또 다른 갈등만 낳게 됐다.
그렇다고 정부와 여당이 나서 법안을 둘러싼 의사-간호사 간 충돌에 중재 역할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힘은 간호법 제정이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아니었다며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간호법 제정을 정식으로 공약한 바가 없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발표한 국정 과제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기사를 검색만 해봐도 국민의힘의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을 두 달 앞둔 지난해 1월 간호협회를 방문해 "간호법을 여야 3당 모두가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함께 공정과 상식에 비춰 합당한 결론이 도출될 수 있게 힘 쓰겠다"고 말한 바 있다. '간호법 제정을 하겠다'고 직접 말하지 않고, 공약집과 국정 과제에 있는 것만 '진짜' 공약이라고 한다면 선거 때마다 내뱉는 후보자들의 말을 다음부터 어느 국민이 믿을 수 있을까.
정부가 지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간호사 처우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밝히며 초고령 사회 진입을 대비한다는 간호법 제정 취지에 맞춰 의료법, 건강보험법, 장기요양보험법, 노인복지법 등 관련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국회가 제정한 법안을 거부하면서 국회 법 개정을 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물론 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하지만 별다른 대안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반복적인 거부권 행사는 근본적 이유가 법안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킨 주체가 야당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여소야대 국면이라면 대통령은 여당에 더 적극적인 협상을 주문하는 것이 맞다. 이 것이 협치다.
제대로 된 논의에 응하지도 않고 야당 주도로 법을 통과시키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야당을 국정 운영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다. 또 국회 입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을 위태롭게 만든다. 정치사에 우리는 이러한 국정 운영 행태를 '독재적'이라고 붙였다.
윤 대통령은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3년 4개월에 걸친 코로나19 종식 선언을 했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헌신한 의료진에게 감사를 표하며 박수를 보냈다. 이후 닷새 뒤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신이 말한 '합당한 결론'이 지금의 간호법 제정안이 아닌 다른 '결론'이라면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진심'이 궁금하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