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최악의 벤처투자 ‘보릿고개’…“모태펀드 늘려야”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벤처·스타트업, ‘버티기 모드’ 돌입 “민간 주도 벤처투자는 시기상조”…모태펀드 증액 필요성 제기

2024-05-24     김원빈 기자
벤처·스타트업

매일일보 = 김원빈 기자  |  벤처·스타트업 투자가 급감하며 현장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벤처·스타트업 투자 혹한기가 지속돼 업계의 신음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 A씨는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벤처·스타트업계의 어려움이 말로 할 수 없이 크다”라면서 “당장 내일 타사 대표가 ‘문을 닫았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실제 이같은 업계의 호소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2023년 1분기 벤처투자 및 펀드결성 동향’을 보면, 올해 1분기 벤처투자는 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0.3% 급감한 수준이다. 같은 시기 ‘벤처·스타트업 강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은 각각 55.1%, 73.6% 급감한 점을 고려하면 선방한 편이지만, 업계의 어려움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1분기 펀드결성은 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역시 전년 동기 대비 78.6% 급감한 수준이다. 여기에는 3고(고금리·고환율·고물가) 글로벌 복합위기로 자금조달 어려움이 커졌다는 점이 기여했다. 또 투자금을 단기간에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 출자자들이 벤처펀드 출자에 보수적인 태도를 보여 비모태펀드 및 순수민간펀드 결성액도 감소했다. 중기(업력 3년 초과 7년 이하) 기업에 대한 투자가 가장 크게 줄었다. 영상·공연·음반 등 콘텐츠 업종은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더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정보통신기술(ICT)서비스·유통·서비스·게임·바이오·의료 등 업종은 투자 감소율이 컸다. 벤처펀드의 출자자 구성에서도 정책금융과 민간부문 모두 전년 동기 대비 출자 규모가 줄었지만, 민간부문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업계에서는 벤처투자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정부의 모태펀드 예산이 증액돼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올해 모태펀드 예산은 4135억원으로 작년(5200억원)과 2021년(1조700억원)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올해 편성 예산 중 1000억원은 업계의 비판으로 추가 증액된 금액으로, 벤처캐피털(VC)이 조성하는 벤처펀드 출자에 사용되지 않고, 연구개발(R&D) 매칭펀드에 사용되고 있다. 주무 부처인 중기부는 ‘민간이 주도하는 벤처투자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이같은 포부를 구체화하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VC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면 중기부가 공언한 바와 같이 민간이 주도하는 벤처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한국의 벤처 생태계가 그것을 성취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상태인지 점검해 보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례없는 수준으로 모태펀드 예산이 축소된 가운데 ‘민간 주도’를 외치는 것은 부족한 금액을 민간에 떠넘기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충분한 모태펀드 예산과 함께 민간 주도 생태계 형성을 병행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 B씨도 “민간 벤처투자의 경우 투자 당사자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다면 굉장히 보수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시기일수록 정부 모태펀드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게 업계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투자를 받은 금액으로 업계가 ‘버티기 모드’로 돌입하고 있고, 향후 1~2년 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모태펀드 예산 증액을 포함해 더 많은 벤처·스타트업이 무너지기 전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