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혹한기에 규제까지…사회적 갈등에 멈춰선 ‘혁신’
비대면 진료, 내달부터 의료소외계층 외엔 사용 제한 원산협 "의약단체 및 의원 목소리에만 귀 기울여" 비판 법률 플랫폼 로톡, 변호사 단체와의 갈등으로 경영난 직면
2023-05-24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스타트업 생태계가 혁신을 잃고 있다. 미래 가치가 높은 플랫폼 사업에 시대를 역행하는 제도가 적용되고, 유관 협회와의 갈등이 커지면서 고통만 가중되고 있다.
코로나19 시절부터 모든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비대면 진료는 내달부터 특정 상황을 제외하면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완전한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내달 1일을 앞두고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안을 발표했다. 사업안에 따르면 앞으로 비대면 진료는 △30일 이내에 △동일 병원에서 △동일한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받은 이력이 있어야만 받을 수 있게 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비대면 플랫폼 업계는 이번 사업안이 “플랫폼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비판하며 철회와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의무였던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비대면 진료는 의료격차 해소에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관련 플랫폼 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해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자 시절 비대면 진료의 효용과 상업적 가치를 언급하며 네거티브 규제 혁신을 발표한 바 있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제도화 관련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 일부 약사 단체의 반대와 여야 정쟁 싸움으로 번지면서 오히려 플랫폼 업계에 계속 불리하게 적용돼 왔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병원에 한 번이라도 방문한 환자’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겠다고 밝혀 관련 단체들 모두 비판에 나선 바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사로 구성된 원격의료산업협의회 측은 “병원 방문이 어려워서 비대면으로 라도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국민에게, 접근 자체가 어려운 대면 진료부터 받으라고 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라며 “동일한 질환으로 30일 내 대면진료 이력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인과의 간단한 문진을 통해 더 큰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막는 것은 건강권 침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정부는 이번 시범안에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찬성하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의약단체 및 그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인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법률 플랫폼의 경우 정부가 업계의 편을 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단체와의 갈등으로 경영난에 직면했다. 올해 초 온라인 변호사 상담 서비스 ‘로톡’은 유관 협회와의 싸움에 버티지 못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운영사 로앤컴퍼니는 지난달 말까지 희망퇴직 작업을 진행했으며 지난해 6월 입주한 신사옥까지 내놨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21년 변호사들이 로톡 등 법률 플랫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변호사윤리장전 조항을 신설해 가입 변호사들에게 탈퇴하라고 압박한 바 있다. 로톡이 이에 반박하면서 협회와의 갈등이 표면화됐는데, 정부와 소비자는 플랫폼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변협이 소속 변호사의 로톡 서비스 이용을 금지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플랫폼 운영에 필수인 변호사들이 협회의 눈치를 보면서 로톡 탈퇴가 잇따르자 결국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말았다. 비대면 진료와 법률 플랫폼은 접근 장벽이 높은 전문 지식을 국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일부 전문직 단체의 고집으로 국민들이 관련 서비스 이용이 제한될 우려가 커진 만큼, 정부가 적극 개입해 중재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원산협 관계자는 “당국이 ‘포지티브 규제’로 제도화를 추진하는 것이 문제”라며 “국민이 경험했던 편리한 서비스들이 편협한 제도로 인해 고사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