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내년부터 ‘전세포비아’ 본격화… 대출 완화 어떻게?
집값 하락·전세사기 등 영향에 수도권 역전세 3만건 돌파 전세반환대출 완화에 “도덕적 해이 우려” vs “완화 필요” 전문가들 “대출규제 완화하되 기준 엄격해야” 한목소리
2024-05-24 나광국 기자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위치한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지난해부터 전셋값이 떨어졌고 여기에 기준금리 인상과 전세사기로 인한 기피 현상까지 겹치면서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며 “임차인들은 보증금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전화가 늘었고 임대사업자들 가운데 갭투자를 이용했던 집주인들은 혹시나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달라 할까봐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셋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으로 시장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도록 보증금 반환 대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임대사업자 및 임차인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출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과 정부가 전세문제에 개입할 경우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24일 아파트 실거래가 플랫폼 호갱노노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최근 3개월간 직전 거래 대비 전세보증금이 낮아진 역전세 계약은 3만2929건으로 집계됐다. 경기도 역전세 계약이 1만7759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 1만870건, 인천 4300건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에선 강남구에 입주가 몰려 2년 전보다 보증금이 낮아진 계약이 늘었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례도 이미 급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살펴보면 올해 1분기 기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액 규모는 총 7974억원으로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4분기(2393억원)의 3.3배에 달하는 수치다. 문제는 전셋값 하락으로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이 부족해 대출을 받는 임대사업자도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택금융공사와 금융업계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1분기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전세 퇴거자금 대출) 잔액은 16조6601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 대비로는 1조535억원(6.8%), 2년 전과 비교해서는 5조2600억원(46.3%) 급증했다. 서울 강동구 하왕십리동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인근 센트라스 아파트의 경우 가장 작은 평수인 전용 57㎡가 작년 10월까지 전세값이 6억까지 올랐지만 최근 4억7000만원까지 내려갔다”며 “이렇다보니 갭투자를 통해서 들어온 집주인들 중에 세입자가 이사를 위해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자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받은 경우가 최근 종종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전세 우려가 커짐에 따라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자 정부는 임대인들이 보증금 반환이 가능하도록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업계에선 대출을 무작정 풀어줄 경우 갭 투기자들까지 정책 혜택을 볼 수 있고 민간계약인 전세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준다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원장은 “정부가 나서서 대출규제를 풀어주면 금융사고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금융기관이 임대사업자들의 보증금 반환 책임을 떠안게 된다”며 “최근 정부가 이와 관련된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만약 규제를 완화하게 된다면 공적자금이 사용되는 만큼 기간이나 금리 조건, 지원 대상 등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장 임차인들의 피해가 크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대출 한도나 지원 시기 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반환할 수 있도록 임대인에 대한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을 저리로 지원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면서도 “은행도 추가 대출이 부실화 우려가 될 수 있기에 대출 금액 한도를 제한하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향후 세입자가 집주인의 추가 대출 여부를 알 수 있는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