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첫사랑을 찾아가는 뱃길…여수 사도
공룡발자국 선명한 자연사박물관, 신비한 바닷길 체험도
2014-11-15 유원상 기자
[매일일보] 가을이 깊어질수록 ‘섬 여행’이 당기는 것은 계절 탓만은 아니다.가슴 속 깊이 숨어 있던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따뜻한 곳을 그리기 때문이다.‘섬 여행’은 날이 추우면 추울수록 그래서 더 간절해진다.외로움을 다독이는 호젓한 섬여행은 벽난로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마음까지 온기가 전해진다.곧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고 보면 몸이 ‘섬’을 찾는 것이 다 이런 이유 때문일 듯싶다.아련한 첫사랑을 찾아가는 뱃길 1시간, 그 섬으로 떠나보자.전남 여수의 사도(沙島)는 좀 외롭다.‘바다 한 가운데 모래로 쌓은 섬’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사도는 다시 추도, 중도(간도), 증도(시루섬), 장사도, 나끝, 연목 등 7개 섬으로 나눠진다.이들을 거느리는 본섬 역할을 하다 정월대보름과 2월 보름, 4월 말 등 한 해 5~6차례 ‘신비한 바닷길’로 만난다.사도는 여수에서 27km 쯤 떨어져 뱃길로 1시간 남짓 걸린다.올망졸망한 섬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삶을 따라가는 뱃길은 것이어서 멀미는커녕 애잔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여수항을 떠난 배는 백야대교를 빠져나와 하화도-상화도~낭도를 거쳐 사도 선착장에 내려 놓는다.야트막한 산과 평평한 모양의 섬마을에는 20여 가구, 스물 너 댓 명의 주민이 산다.밭농사와 고기잡이, 민박집을 운영하는 게 이들의 생업이지만 섬에 들어갔다 나오기까지 만나는 주민의 수는 손꼽을 정도로 적다.그만큼 호젓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추도를 제외하면 사도의 섬들은 걸어서 투어가 가능해 느릿느릿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두 세 시간이면 된다.◆거대한 자연사박물관...공룡 나올라
선착장에 내려 마을길을 따라가면 가장 먼저 거대한 공룡모형이 반긴다.먼 옛날 이곳에서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 2마리가 육중한 몸체를 내보이며 사도를 알린다.관광안내센터를 돌아 해변길로 나오면 멀리 나로도 우주센터가 보이는 곳에 공룡체험교육장을 만들어 놓았다. 사도에 살았던 그들의 모형과 공룡발자국 등이 전시돼 있다.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사도는 거대한 자연사박물관이다.공룡화석지 퇴적층 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은 약 8000만~90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시대 것들로 이곳에서 755개나 발견됐고, 84m가 넘는 공룡발자국 보행렬은 세계 최대급이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종류도 다양해 규화목 및 식물화석과 연체동물화석, 개형충 같은 미화석, 무척추동물화석, 생흔화석 등이 발견돼 거대한 자연학습장을 이룬다.장구한 세월 자연이 빚은 퇴적층은 마치 쥬라기시대를 여행하는 듯 착각하게 한다.퇴적암 지층이 켜켜이 쌓인 해안 절경은 그 자체로 신비감을 더한다.여수시와 고성, 보성, 화순, 해남 등 지자체들은 이곳 사도를 포함해 ‘한국백악기공룡해안’이라는 테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섬 일대에서 나는 숨비 소리공룡체험교육장을 나서 해안가를 따라가면 야트막한 산이다.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정상 길을 오르면 노송이 굽어보고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다.파도 소리가 살짝 잦아들 즈음 내막길로 들어서자 아래로 낭도리공룡 발자국 화석산지가 내려다보인다.공룡알 같은 동그란 바위들이 흩뿌려져 있고, 바위 표면은 칼로 자른 듯 떨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하다.분출된 용암이 바다로 이어지고 깎아지른 절벽은 켜켜이 쌓아올린 모양새를 하고 있다.사도교를 따라가는 길에 ‘쉬~’하는 숨비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마을 해녀들이 섬 주위를 돌며 멍게나 해삼, 문어 등을 채취하느라 부산한 모습인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듣는 것도 처음이다.간도에서 시루섬으로 가는 양면해수욕장은 한 폭의 그림이다.밀물 때는 잠기고, 썰물 때는 폭 50m의 모래해변이 드러나는데 조개껍질이 부서져 빛깔이 더 곱고 맑은 날이면 물색깔이 에메랄드 빛깔을 띤다.사도의 7개 섬 중 볼거리가 가장 많은 곳이 시루섬이다.용암에 쓸려 내려가던 나무가 화석이 된 규화목과 용암이 바다로 흘러내리다 급격하게 식으면서 형성된 용(龍) 모양의 용미암, 마을 사람이 다 앉아도 여유있을 멍석바위, 얼굴바위 등 진귀한 기암들이 나타난다.그 바위아래를 지나는 사람들이 손톱만해 보인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다시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마을 안길의 돌담이 아기자기해 보인다.등록문화재일 만큼 귀한 것들이라는 돌담은 100년 넘게 사도의 골목을 지키고 있다.◆슈퍼도 식당도 없는 소박한 섬사도는 번듯한 관광지가 아니어서 두 가지가 없다.하나는 그 흔한 슈퍼가 없다. 마을길을 따라 가면 구판장이 있기는 한데 늘 자물쇠가 채워져 뭘 살 수 없다.
숨비 소리 내는 그 해녀들이 바다에 나가 있으니 문을 열 틈이 없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또 하나는 정식으로 문을 연 식당이 없다.그냥 민박집에서 해주는 밥이 전부여서 섬 자체가 소박하기 그지없다.고즈넉한 섬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이곳에서 숙박을 해도 좋을 듯하다. 여수사도식당민박(061-666-9199) 등 4곳이 운영 중이다.사도 바로 앞에 있는 추도는 정기선이 없어 가기가 쉽지 않다.일 년에 몇 차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면 사도와 연결되는 데 직선거리로 750m 남짓하다.단 3명만 사는 섬에 그래도 꼭 가고 싶다면 낚싯배를 빌려타고 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