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쌓이고 빚 늘고...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수출절벽 직격탄
1612개 상장사 재무제표 악화...영업익 뚝뚝 부채는 쑥쑥 중기 신규 부실채권 올 1분기 2조 육박...1년새 1조 증가
2024-06-13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지난해 국내 1600여개 상장사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분의 1가량 줄어드는 등 수익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게다가 고금리에 기업의 이자 비용은 3분의 1가량 늘면서 기업의 부채 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3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평가데이터가 함께 1612개 상장사(대기업 159개·중견기업 774개·중소기업 679개)의 지난해 재무 상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 대상 상장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2021년에 비해 12.1% 증가하며 2년 연속 순성장을 기록했다. 다만 성장세는 분기를 거치며 둔화 양상을 보였다고 상의는 덧붙였다. 영업이익은 34.2% 감소했다. 코로나 기간인 2020년과 2021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22.7%, 60.8% 증가한 것과 대조됐다. 규모별로는 대기업의 영업이익이 44.1% 급감했다. 중견기업은 9.2% 증가했으며, 중소기업은 3.1% 감소했다. 대한상의는 "지난해 4월 이후 무역수지가 1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등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의 최전선에 있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은 1년 전보다 6.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총부채는 10.4% 증가해 총자산 증가 폭을 앞질렀다. 지난해 조사 대상기업의 이자 비용은 14조2천억원이었다. 급격히 금리가 오르면서 기업이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은 전년 대비 31.9% 증가했다. 기업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배율은 5.1배로 전년(10.1배)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됐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 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기업의 안정성도 악화했다. 조사 대상 기업의 부채비율은 79.9%로 전년 대비 4.8%포인트 상승했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은 전년 대비 4.6%포인트 오른 77.5%를 나타냈다. 중견기업은 전년보다 6.2%포인트 오른 96.2%, 중소기업은 0.4%포인트 오른 44.5%로 집계됐다. 기업의 총자본에서 부채를 제외한 자기자본의 비중을 나타내는 자기자본비율은 전년 대비 1.5%포인트 하락한 55.6%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4년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의 활동성을 측정하는 지표도 악화했다. 총자산에서 재고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4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인 7.7%로 나타났다. 재고자산이 매출로 이어지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재고자산회전율은 10.6회로 전년(11.7회)보다 하락했다. 회전율이 높을수록 재고자산이 매출로 빠르게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영업이익은 크게 깎이고 기업의 부채 부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기업 현장의 우려가 큰 상황"이라며 "기업 활력 회복과 경기 활성화를 위해 선제적 통화정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을 대려고 원래부터 은행 대출을 받았던 중소기업들은 속속 연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신규발생 현황'을 봐도 알 수 있다. 부실채권은 은행 대출금 중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것이다. 중소기업 금리가 내리긴 했지만 새로 받는 대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기존 대출에 해당하는 잔액기준 금리는 지난해 11월 5.31%에서 올해 4월 5.26%로 거의 변화가 없다. 중소기업 신규대출 금리(5.16%)보다 높은 수준이다. 새로 생긴 부실채권 규모를 살펴보면 중소기업이 유독 눈에 띈다. 중소기업의 신규 부실채권은 작년 1분기 9000억원에서 올해 1분기엔 1조8000억원으로 9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기업(3000억원→1000억원)은 신규 부실채권 규모가 줄었다. 부문별 부실채권 비율도 사정이 비슷하다. 올해 1분기 기준 중소기업 여신의 부실채권 비율은 0.57%였다. 전년동기 대비 0.0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같은 기간 대기업 여신(0.38%)은 0.42%포인트 하락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확산 이후 4년째 운영하던 중소기업·자영업자 대출 상환유예 제도는 9월 종료된다. 석 달 뒤에 끝나는 원금·이자 상환유예 조치를 받은 대출은 6조5000억 규모다. 하지만 9월 이후에도 차주와 금융권의 상환 계획에 따라 기존 이자에 거치기간을 부여하고 최대 60개월 동안 분할 상환할 수 있다. 만기연장(78조8000억원)의 경우 이자를 착실하게 갚고 있는 경우라 2025년 9월까지 계속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출의 전체 규모는 지난해 9월 말 100조1000억원에서 올해 3월 85조3000억원으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자금 여력이 개선된 경우가 있고, 저금리 대환대출 등을 통해 상환을 완료한 경우도 많다"고 분석했다. 중소기업의 경우 자금조달도 사실상 막혀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대기업의 절반 가까이는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지만, 중소기업은 열 곳중 한 곳 정도만 회사채 자금 조달이 가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발표한 ‘금리상승에 따른 기업 부채구조의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기업 중 회사채 조달 실적이 있는 기업 비중이 18.5%라고 밝혔다. 이는 2021년의 25.4%보다 대폭 줄어든 것이다. 무엇보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조달 비용이 상승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다.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 진다는 것은 기업의 경영환경이 점점 나빠지게 됨을 의미한다. 특히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직격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대기업의 49.6%가 회사채 발행 조달 실적이 있었지만, 중소기업은 9.4%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과 비교했을때 대기업의 회사채 발행 실적 비중은 4.7%포인트(54.3%→49.6%)줄었지만, 중소기업은 9.5%포인트(18.9%→9.4%)나 줄었다. 중소기업의 발행 여건이 더 안좋아졌다는 의미다. 자본시장연구원 김필규 선임연구위원은 “우량한 신용도를 가진 대기업 중심의 회사채 시장 구조가 더욱 고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