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세물량 절반이 역전세… 하반기 깡통전세 리스크 커져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전세 54%, 2년 전보다 하락 한국은행,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 102만6000가구 진단 정부, 전세금 반환시 DSR 완화 추진… “새 세입자 피해 우려”
2024-06-14 나광국 기자·이소현 기자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이소현 기자 | # 등록임대사업자인 A씨는 고민이 깊다. A씨는 지난 2021년 8월 서울 중랑구 아파트를 5억3000만원에 전세를 놓았는데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달라는 연락을 받아서다. 해당 아파트 시세가 거의 1억원 떨어지면서 4억2000만원 수준인데 자녀 결혼 등 목돈을 사용한 탓에 A씨는 전세금을 돌려줄 길이 없어 아파트 매물을 매매할 고민 중이다.
지난 2022년부터 전셋값이 하락세를 이어가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지는 깡통전세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2021년 하반기 높은 가격으로 체결한 전세계약 만료기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세 보증금 반환 목적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전문가들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문제라며 근본적인 해결책도 함께 강구해야 할 때라고 조언한다. 14일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에 거래된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6만5205건(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 기준) 가운데 올해 1~6월까지 동일 단지·면적·층에서 1건 이상 거래가 발생한 3만7899건의 보증금(최고가 기준)을 비교한 결과, 2만304건(54%)이 직전 계약보다 전셋값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역전세 거래의 전세보증금 차액은 평균 1억152만원이었다. 예를 들어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의 경우 2021년 하반기 11억원이 넘는 가격에 다수의 전세계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현재 시세는 9억원 안팎이다. 기존 체결했던 계약이 신규로 체결할 계약보다 비싸기 때문에 임대인은 임차에게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2억원 가까이 시세보다 더 많은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역전세 비중이 전체 전세 가구의 절반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나왔다. 한국은행이 발간한 ‘금융·경제 이슈분석 : 깡통전세·역전세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살펴보면 집을 팔아도 세입자 보증금에 못 미치는 이른바 ‘깡통전세’ 위험가구 비중이 지난해 1월 2.8%(5만6000가구)에서 올해 4월 8.3%(16만3000가구)로 3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도 같은 기간 25.9%(51만7000가구)에서 52.4%(102만6000가구)로 1년 3개월 만에 2배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세 시세 하락분을 감당하지 못 해 빚을 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는 집주인도 늘었다. 4대 은행(KB은행·신한·하나·우리) 집계 결과, 올해 1∼5월 신규로 취급한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은 약 2조6885억원 규모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 2조6966억원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이는 지난 1월말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으로 수요가 일부 분산됐기 때문이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임차보증금 반환 목적의 특례보금자리론 유호 신청 금액은 2조49억원이다. 지난해 임차보증금 반환목적 보금자리론 공금액이 8002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전체 공급액의 2.5배 수준의 금액이 올해 5개월 만에 신청된 것이다. 정부도 다가오는 역전세난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지만 쓸 수 있는 카드는 마땅치가 않다. 전세반환보증 의무가입이나 전셋값에 상한을 두는 등의 방안은 당장의 해결책이 될 수 없어서다. 그나마 실효성 있다고 평가되는 것이 DSR 규제 완화다. 집주인들의 자금 융통을 원활하게 하면 애꿎은 전세 세입자의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해당 방안에 공감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양 대정부 질문에 참석해 DSR 규제 완화에 대해 “임대인 입장에서의 자금융통 부분에 물꼬를 터주는 게 맞지 않을까 해서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효성 정도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보증금 미반환으로 문제가 생기면 이로 인한 손해는 무주택 세입자가 지게 된다”며 “문제는 집주인은 전세금을 받아 생활비로 쓰든 재투자를 쓰던 마음대로 써버리고 이제 전셋값이 떨어지면 국가가 이를 또 채워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용도를 확실하게 정해두고 또 대출을 환수하는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긍정적인 작용은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잘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부정적인 부분은 가계부채가 증가해서 부실화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며 “당국에서 DSR을 확대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대출 능력을 철저히 심사해 부실화를 방지하고 새 임차인을 구하게 되면 상환하도록 하는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입자 피해를 우려해 규제 완화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송승현 도시와 경제 대표는 “새 세입자는 더 위험한 임대인 집에 들어가게 되는 구조로 겉으로 볼 때는 세입자를 위한 것 같겠지만 사실 세입자 돌려막기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지금도 깡통전세다 말이 많은데 대출을 풀어주면 선순위가 늘고 그런 곳들은 또 다시 내몰리게 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