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나홀로 약세'…日정부 시장개입 가능성 증폭
원화 대비 800엔대 일시 진입…유로화 대비 15년 만에 최저
2024-06-19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주요국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가운데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고수하면서 일본 엔화가 주요 통화에 대해 '나 홀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엔화 가치는 유로화에 대해 약 15년 만에 최저로 떨어진 데 이어 달러화에 대해서도 올해 줄곧 약세를 보이면서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19일 원/엔 환율은 2015년 6월 25일 이후 8년 만에 일시적으로 100엔당 800엔대에 진입했다.
이날 오전 8시 23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897.49원까지 떨어졌다가 이후 900원대 초중반에서 움직였다.
엔화는 또 이날 오전 유로당 155엔대에 거래되면서 2008년 9월 이후 약 15년 만에 가치가 가장 낮아졌다.
엔화 가치는 또 달러당 141엔대를 기록하며 작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작년 달러당 151엔대까지 엔화 가치가 떨어져 199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 것보다는 높은 수준이지만, 올해 들어 달러화에 대해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엔화는 영국 파운드와 스위스 프랑, 호주 달러 등 다른 선진국 통화뿐 아니라 브라질 헤알 등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도 약세를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엔화 가치 하락 배경에는 중앙은행의 금융정책 방향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동결했으나 올해 하반기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1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다음 달에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방침을 보였다.
세계 중앙은행이 고물가를 잡기 위해 이렇게 금리 인상을 이어가는 가운데 일본은행만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16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금리를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정도로 유도하는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하기로 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정책결정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내외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끈기 있게 금융완화를 지속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본은행이 금융완화를 유지할 방침을 시사함에 따라 초저금리인 엔화를 빌려서 고금리 통화를 사는 방법으로 금리 차 수익을 노리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늘어난 것도 엔화 약세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월가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단기금리 인상을 논의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이상 중기적으로 엔고가 진행될 여지는 아직 한정돼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엔화 약세가 지속하면서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것이라는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지난해 9∼10월 강달러 현상으로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40∼150엔대를 기록하자 24년 만에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매수하는 시장 개입을 단행한 바 있다.
이와시타 마리 다이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닛케이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5엔대까지 하락하면 정부 내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위기감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