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침수피해 방지, 100%는 못하지만…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올해 여름은 ‘슈퍼 엘니뇨’ 영향이 클 전망이다. 꼭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엘니뇨로 저기압이 생성되고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과 세력다툼을 벌이게 되면 한반도에 집중호우가 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장마가 길어진다는 의미다.
집중호우가 잦아지면 걱정되는 것은 침수피해다. 한국도 지난 2022년 8월 집중호우로 도시 절반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다른 부분은 차지하고서라도 전국에서 침수로 인한 사망자만 14명이 발생했다.
당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도 물막이판 등 침수방지시설 설치와 반지하 인구 주거 이전 지원 등 나름의 대책을 내놨으나, 막상 근본대책은 없다. 근본대책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무엇을 내놓아야 할 지에는 의문부호가 찍힌다.
한국은 70%가 산간지역이고, 대부분의 인구들이 나머지 30% 저지대에 옹기종기 모여사는 구조다. 심지어 30% 저지대에서도 강이나 하천 인근으로 갈수록 생활적으로는 물론 산업적 측면에서도 활용도가 높아 인구밀도는 높아진다.
인구밀도가 높으면 자연 침수로 인한 피해발생율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국내 부동산 1번지가 된 강남도 개발되기 전 강북 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로 인해 침수가 잦은 곳이었다. 오죽하면 박정희 대통령도 이병철 삼성 회장과 정주영 현대 회장에 한 나라의 수도 내에서 침수가 일어나는 게 말이 되느냐며 댐 건설을 지시했을 정도였다.
그 뒤 반세기 가까이 지났는데 인명피해가 적을 뿐 여전히 강남은 물에 잠긴다. 창립한지 70년이 된 포스코조차 지난해 태풍에 따른 제철소 침수를 피하지 못했다. 심지어 포항제철소는 인근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과 배수로 시설까지 정비한 상태였다.
인간의 기술이 한없이 진보했다 한들 아직까지는 자연의 거대한 변화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다는 의미다.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도 침수피해 예방 근본대책의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 침수사태 이후 반지하주택을 중장기적으로 없애되, 단기적으로는 가정마다 침수방지시설을 설치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가뜩이나 국토가 좁아 인구밀도도 높은데 반지하를 없애면 주거사다리가 끊길 서민들의 대안은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건지. 이 경우 집값 변동에 따른 시장 혼란은 물론 이주민들에 대한 주거비 마련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라에서 주겠다는 지원금 20만원으로는 택도 없고, 애초에 반지하에 살고 싶어서 들어가는 인구도 없다. 침수방지시설 100% 설치도 집주인이 따로 없는 사회주의 국가라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책상머리 행정의 한계는 고스란히 수치로 나타난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지난해 침수사태 후 서울에서 반지하에서 민간 주택 지상층으로 이주한 가구에 대해 월 20만원, 최장 2년간 바우처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현재까지 970가구를 대상으로 총 2억4800만원이 집행됐다. 이는 전체 반지하 가구 지원 예산 중 0.5%에 불과한 수준이다.
침수방지시설도 지난 5일 기준으로 30%의 가구만이 설치가 완료됐다. 이 수치가 더 이상 오를 것이라 보기 힘든 게 집주인들이 집값 하락 등을 감수하고 대놓고 여기 침수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시설을 설치할 지 의문이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분명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를 모두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소중한 생명이 스러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현재까지 만족할 만한 대안은 누구도 내놓고 있지 못하지만, 호우 전 비상 대응행동체계 수립 및 집중피해지역에 대한 침수시설 강화 등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분명히 해야 할 책무는 그 과정을 책상머리에서 결정하지 말고 현장을 충분히 돌아보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