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에 칼 빼든 정부…금융사 직원 잘못도 임원 책임 묻는다

임원별 책무 명시…반복적·조직적 사고는 CEO 책임 이사회 감시 강화...김주현 "인식과 가치관 바꿔야"

2024-06-22     이광표 기자
김주현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금융당국이 내부통제와 관련한 금융회사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해두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 불완전 판매와 횡령 등 대형 금융 사고 발생 시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관행을 원천 봉쇄하고, 내부통제에 대한 조직 전반의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22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금융감독원과 함께 금융권 협회장 간담회를 개최하고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각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사전적으로 기재해두는 '책무 구조도(responsibilities map)'가 도입된다. 대상은 최고경영자(CEO),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등 이른바 'C-레벨' 임원들로, 대형은행 기준 20~30명 수준이다. 작성된 책무 구조도는 이사회 심의·의결을 거쳐 확정되고, 이후 금융당국에 제출되는 구조다. 회사 특성을 반영해 스스로 작성하는 책무 구조도인 만큼 당국으로부터 승인받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 시 시정 요구를 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책무 구조도에서 금융회사 주요 업무에 대한 최종 책임자를 특정함으로써, 내부통제 책임을 하부에 위임할 수 없도록 하는 원칙을 구현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영국, 싱가포르 등 주요국에서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던 방식으로서, 한국 내부통제 제도의 국제적 정합성을 높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책무 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내부통제 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기준 준수 및 작동 여부 등을 상시 점검하는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특히 CEO는 책무 구조도의 총 작성 책임자로, 각 임원의 통제 활동을 총괄 관리해야 한다. 조직적이거나 장기간·반복적, 광범위한 사고 발생 등 시스템 실패로 판단될 경우 이러한 관리 의무를 다하지 못한 점을 들어 CE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그간 횡령이나 부실 펀드 판매 등 대형 금융 사고가 터졌어도 CEO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불명확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새 제도 도입 시 내부통제 관리 의무를 위반한 임원에 대해 해임 요구·직무 정지 등 제재를 가할 근거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다만 금융당국은 이번 제도 개편의 방점이 금융회사 임원 '제재'가 아닌 금융사고 '예방'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금융사고 발생 시에도 객관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정도의 관리 조치를 충실히 한 경우 책임을 경감하거나 면제해주기로 했다.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 역할도 명확해진다. 이사회 심의·의결 대상에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정책 관련 사항을 포함했고,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그간 '거수기'나 '경영진 방패막이'로 불리던 이사회의 견제 기능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금융위는 이러한 내용을 반영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은행·금융지주에 우선 적용한 뒤 대형 금융투자회사·보험회사, 중소형 금융회사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내부통제 제도 개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적인 제도 변화가 아니라 조직 전체 구성원의 인식과 가치관을 바꿈으로써 실질적인 행태의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제도 개선 취지를 감안해 '정직한 영업'에 대한 최고경영진 의지를 직원들이 공감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펀드 불완전 판매와 대규모 횡령 사태 등을 현장에서 검사하면서 그 원인의 대부분이 내부통제 문제임을 확인했다"며 "경영진들이 자신의 책무로 인식하지 않았고 점검도 미흡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CEO와 임원의 책임이 명확해지는 만큼 내부통제 부실에 따른 금융사고 발생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