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치·이념 갈등에 갈 길 잃은 韓기업
지난해 5월부터 대중국 무역적자 누적 170억 달러 초과 국내 소부장 기업 86.5%, 일본산 사용 정치권 성향 따라 '경영 위태'… 경제-외교 분리하는 제도적 장치 절실
2023-07-02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한일-한중 관계를 둘러싼 여야 정치권 마찰이 지속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경영 방향성을 잡지 못하는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무역수지가 16개월만에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난해 5월부터 누적된 대중국 무역적자가 약 22조 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9년 당시 한일 관계 악화로 추진됐던 소부장 국산화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내 제조사의 일본 소부장 의존도 또한 매우 높은 상태로 나타났다. 향후 어떤 정당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외교 관계가 완전히 역전될 수 있어 산업계는 정치권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정치권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와 윤석열 대통령의 반중(反中) 기조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미국과 함께 철저히 반중 스탠스를 고수하며 한일 관계 정상화에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동시에, 정부여당의 일본의 오염수 방류 동조는 굴욕외교라며 반일 정서로 맞서고 있다. 기업들은 일본과 중국 모두 놓치기 어려운 주요 교역국인 만큼, 어느 한 쪽도 버릴 수 없다며 정치권의 화합을 촉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6월 무역수지는 11억3천만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월간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해 2월 이후 16개월 만이다. 다만 상반기 국가·지역별 수출 증가율 현황을 보면 지난해 대비 중국 -26%, 아세안 -20.4%, 중남미 -14.6%로 감소해 중국이 가장 큰 하락세를 나타냈다. 반면 최근 외교 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된 중동과의 수출은 14.3%, 미국이 0.3%, 유럽연합은 5.7%로 늘었다. 경제인들은 전체 대중국 무역적자가 최근 큰 폭으로 확대된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9일 전체 무역수지 적자에서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 기여도가 2022년 12.8%에서 2023년 43.2%로 확대됐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5월부터 현재까지 대중국 무역적자 누적 170억 달러(한화 22조 3000억원)를 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무역수지 적자는 중화학공업품이 전체 수출의 89%를 차지하는 수출구조에 상당 부분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화학공업품의 대중 수출액은 전년 동월 2022년 5월 대비 24% 감소했는데, 특히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 전자제품(△29%) 품목의 수출액 감소폭이 가장 크게 나타났다. 디스플레이, 배터리, 스마트폰, 반도체 등은 국내의 핵심 품목이었는데, 중국이 지난 30년 간 관련 기술에 적극 투자해 결국 한국산업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해당 품목 경쟁력을 강화한 중국 입장에서는 노골적으로 반중 정서를 내비치는 한국의 제품을 사용하거나, 국내사와 협력할 이유가 더욱 없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화장품 원료업체 H사 관계자는 “코로나19 당시 중국 봉쇄 시절만큼이나 현지 매출이 안 나오고 있어 원료에 대한 수요도 크게 줄었다. 한국산으로 알려진 제품들이 현지인들에게 외면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은 2016년 이후 사드 보복 사태로 중국 내 매출에서 타격을 입은 뒤 아직까지도 이전 실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일본 정부가 2019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제외한 지 약 4년 만에 화이트리스트에 복원하기로 결정, 양국의 경제 무역 갈등이 끝나게 됐다. 그러나 기업계는 아직 안심할 수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리스트에서 제외했던 것은 2018년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일본을 똑같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맞섰을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향후 야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다시 한일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 기업들은 관계 개선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 측은 “2019년 7월 이후 약 2년간의 사상 초유의 한일간 경제갈등은 실제 3대 수출규제 품목의 대일 수입 감소분은 미미한 반면, 반일·혐한 감정 등 부정적 효과 등으로 양국 간 교역.직접투자.인적교류 등을 감소시켜 경제적 피해만 키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일 정치․외교 갈등은 양국 경제 모두에게 타격을 미쳤다. 한국경제연구원이 2019년을 기준으로 전후 2년간의 교역(수출+수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본과의 교역액은 11.9% 감소했다. 악화된 한일관계는 양국 간의 직접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제조업 부문 해외직접투자 순투자액주은 2017~2018년 217억 달러에서 2019~2020년 279억 달러로 28.6%나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직접투자는 168백만 달러에서 125백만 달러로 △25.6% 급감했다. 한일 외교갈등 당시 문재인 정부가 약속했던 ‘소부장 국산화’도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소부장(3260개사)들은 △국내 기술력 부족과 국내에서는 생산하지 않음 △우수한 품질 등을 이유로 86.5%가 일본산 소부장을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일본 A제약사 관계자는 “양국 모두 서로의 핵심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대체제를 마련할 방도도 없어 한일 갈등은 산업계에 큰 타격이 미친다. 향후의 한일 상호 수출규제를 외교문제와 분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