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체율 올라도 공급만 강조…“금융위기 막을 특단대책 시급”

4월부터 가계대출 지속 상승..취약차주 부실 리스크 부상 “우산 빼앗지 말라” vs “가계부채 양적·질적 관리가 먼저”

2024-07-02     이광표 기자
이복현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고금리가 길어지며 전 금융권의 대출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며 금융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권 안팎에선 대출 부실사태가 일어날 경우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금융당국은 "저신용자들의 우산을 뻿지 말라"는 말만 반복하며 대출 공급만 지속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이 지난 6월에만 60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22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6040억원 불어났다. 이달 남은 기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은행권 가계대출은 지난 4월부터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들어 뒷걸음질 치던 가계대출은 4월부터 다시 늘면서 디레버리징 흐름에도 제동이 걸렸다. 올 들어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로 주택거래가 살아나고 금리 인상이 정점에 도달했다는 기대감이 확산한 점이 대출 수요를 자극했다는 해석이 많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규모도 문제지만, 부채의 질 악화도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은이 이달 발간한 ‘상반기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가계대출 연체율이 금융권 전반에서 상승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금융권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83%로 1년 전(0.56%)보다 높아졌다. 문제는 저소득층, 자영업자, 다중채무자 등을 포함한 취약차주의 연체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이들의 상환 여력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신규 연체차주의 절반 이상인 58.8%가 취약차주였고, 이 가운데 39.5%는 연체잔액이 연소득을 넘어섰다. 한국은행은 연체율이 아직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추정했는데, 향후 연체율 악화가 금융 부실로 확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자영업자 연체율은 올 1분기 1%로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저소득층의 연체율은 1.6%, 중소득층의 연체율은 1.8%로 2%에 육박했다. 한국은행은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지연되고 대출금리 부담이 유지될 경우 연말 자영업자 대출의 연체 위험률이 3.1%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2020~2021년 저금리 환경에서 잠재되어 있던 취약차주의 가계대출 관련 리스크가 금리 상승 등으로 나타나면서 연체율이 상승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특히 취약차주 중심으로 늘어난 가계대출 연체채권은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이나 자본비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계대출 증가로 금융불균형 축소가 제약되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 내 중장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도 올 1분기 48.1로 지난해 말(46)보다 높아졌다. 김인구 한국은행 금융안정국장은 “4월부터 가계대출이 늘었기 때문에 취약성지수는 2분기에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현재 상황을 점검한 결과 충분한 대응이 가능한 수준으로 진단하며 안일한 대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대출 축소 움직임에 제동을 걸며 지속적인 대출 공급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금융권을 향해 소상공인에 대한 자금공급 노력을 지속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원장은 "최근 카드사 등 제2금융권이 연체율 상승 등으로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에 나서면서 소상공인 등 중·저신용자에 대한 자금공급이 과도하게 축소되는 것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전성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것은 금융회사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합리적인 여신심사를 통해 서민에 대한 자금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금융당국이 대출 공급만 강조할게 아니라 가계부채의 양적, 질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금리 정점 인식 확산 등으로 충분한 부채 축소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 가계부채 규모가 늘고 증가 속도가 빨라진 가운데 부채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며 “부채 규모, 속도 관리와 금융권 간 풍선효과 차단 등 부채의 질 관리, 차주의 상환 능력 범위 내 대출 관행 정착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