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무’된 친환경… 정립 없는 혼란만 가중
선진국 "친환경 의무 불이행시 고객사 거래 및 계약 중단할 것" 정부, 'CF100' 친환경 표준으로 추진… 글로벌 표준 'RE100' 대비 해외 수용 저조 ESG평가기관 난립으로 신뢰성 하락… 정부, 평가기관 가이던스 마련 추진
2023-07-04 이용 기자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트렌드가 경제계 중요 이슈로 자리 잡으면서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선진 시장과 소비자들은 ‘탄소중립’을 중요한 투자 요소로 인식하는 민큼, 국내 산업계의 신속한 친환경 경영 이행이 요구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기업 과반수는 친환경과 관련된 글로벌 표준의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102개사 응답)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31.4%만이 CF100의 정확한 개념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CF100(Carbon Free Energy 100%)는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무탄소에너지’로 조달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국제기구인 UN과 Google이 주도하고 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밀고 있는 국제 표준이다. RE100(Renewable Energy 100%)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53.9%로, 겨우 절반을 넘는 수준이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글로벌 캠페인으로, 영국 민간단체인 The Climate Group이 주도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개념인 CF100에 비해 RE100은 2014년부터 꾸준히 홍보됐음에도 인식이 낮은 형편이다. 국내의 낮은 위상과는 달리,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해당 기준을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가치 평가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 대세’로 자리 잡고 있는 지표는 전 세계 4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RE100이다. CE100에 참여한 기관은 120개 수준이다. 현재 미국, 유럽 등에는 RE100을 기준으로 기존 산업의 친환경을 리드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중이다. 해외기업과 거래 시 ESG 평가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 기업들은 친환경을 강요받고 있다. ESG란 기업경영에 친환경(E), 사회적 책임 경영(S), 지배구조 개선(G)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지표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기업에게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급망 실사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제재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은 기업에게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공급망 실사 의무를 부여하고 위반 시 제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재작년 ESG 등 비재무적 요소가 취약한 기업들을 펀드 구성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 측은 공급망 ESG 실사법이 올해 독일에서부터 시행되고 내년부터 EU 전체로 확대되면서 국내외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협력업체에 ESG 실사를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실사 결과에 따라 고객사와의 거래나 계약이 중단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글로벌 대세로 자리잡은 RE100 대신, CF100을 표준으로 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 또 일부 기업 및 언론은 글로벌 사회에 ESG 평가기관이 매우 많고, 기업에게 공개를 요구하는 불필요한 자료가 많아 평가 기준이 모호하다며 신뢰성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유럽은 평가기관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정리에 나섰다. 이제 평가회사들은 EU의 증권감독기구인 유럽증권시장청(ESMA)의 승인과 감독을 받게 된다. 국내 금융위원회도 최근 ESG 평가시장의 투명성‧신뢰성을 제고하기 위해 ESG 평가기관 가이던스를 마련한다. 평가기관이 정리되면, 기존에 높은 신뢰를 얻고 있던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와 한국ESG기준원 평가에 대한 신뢰성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앞서 이뤄진 평가에서도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들조차 높은 등급을 받지 못한 상태다. 글로벌 펀드의 투자기준이 되는 지표이자 최초의 국제 벤치마크인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에게서 최상위 등급인 AAA 등급을 받은 기업은 네이버, SK, KB금융 3개사 뿐이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었던 중국과의 갈등으로, 국내기업의 주요 무역 무대는 미국과 유럽으로 옮겨가고 있다. 좋든 싫든 해당 기관에서 높은 등급을 우선적으로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또 환경 문제에 스마트 공장, 임직원 환경 봉사활동 등으로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뒤쫓아가기도 힘들어 ‘친환경 빈부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기술보증기금(KIBO)이 중소기업을 대상(종사자수 10인 이상 기업 3724개)으로 저탄소・친환경 경영 관련 실태조사 결과, 탄소 중립 준비가 됐다고 응답한 업체는 3.2% 뿐이었다. 의료기기 제조업체 I사 관계자는 “글로벌 진출을 앞둔 기업은 RE100과 CF100 중 어느 쪽 공정을 선택할지 정부와 정치권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정 기준에 맞춘 공정을 섣불리 도입했다가 방향성이 바뀌면 회사가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