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분단 후 첫 남북합의 '7·4공동성명' 사료 공개

통일부, 심의 통해 6일 자료 공개 고위급 비밀접촉 등 성사 이면 보여줘 박정희·박성철-이후락·김일성 면담 기록은 제외

2024-07-06     이태훈 기자
1972년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성사시킨 이면 과정을 보여주는 남북회담 사료가 6일 공개됐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당국간 협의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큰데, 이번 자료 공개로 그간의 궁금증을 일부 해소할 수 있을 전망이다.

통일부는 이날 1971년 11월부터 1979년 2월까지의 총 1678쪽에 이르는 정치 분야 남북회담문서 2권을 공개했다. 공개된 문서에는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전 정홍진-김덕현 간 비밀접촉(11회, 1971년 11월∼1972년 6월) △7·4 남북공동성명(1972년 7월)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회의(3회, 1972년 10∼11월) △남북조절위원회 회의(3회, 1972년 11월∼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 부위원장 회의(10회, 1973년 12월∼1975년 3월) 진행과정과 회의록 등의 내용이 담겼다. 비밀접촉에선 실무자는 물론 고위급 인사의 교환 방문이 은밀하고도 수시로 이뤄졌다. 우리 측에선 1972년 3월 정홍진 회담운영부장(중앙정보부 차장보 역임)이 평양을, 그 다음달엔 북한의 김덕현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지도원이 서울을 각각 방문했다. 그해 5월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과 회담했고, 김일성 주석과도 두 차례 만났다. 같은 달 29일에는 박성철 북한 제2부수상이 서울에서 이 부장을 만난 뒤 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남북은 고위급 비밀접촉에서 합의한 내용을 7월 4일 각국 수도에서 공동성명 형식으로 동시 발표했다. 성명에는 '자주통일', '평화통일', '민족의 단결 도모' 등의 내용이 담겼다. 7·4 남북공동성명은 분단 후 최초로 성사된 양국 합의로, 향후 평화통일을 위한 이정표로 기능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전단 살포 등 상호 비방으로 관계가 악화됐고, 남북조절위원회도 구성과 의제에 견해차를 보이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편 큰 관심을 모았던 이후락·김일성 면담과 박정희·박성철 면담 기록은 심의 결과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남북회담문서 공개 심의는 3년 주기로, 오는 2026년 다시 논의될 예정이다. 공개된 남북회담문서 원문은 남북회담본부, 국립통일교육원, 북한자료센터에 마련된 남북회담문서 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자세한 남북회담문서 공개 목록 및 열람 절차 등은 남북회담본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