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벨트 덕에 살았다

2024-07-13     박찬순 도서출판 예술의숲 대표
박찬순

매일일보  |  1997년 여름이었다. 그해 8월 초 YMCA에서 공부를 함께 한 ‘뜨락’이라는 모임과 대야산으로 1박 2일 휴가를 갔다. 일곱 명이 갔는데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서 얼마지 않아 ‘피아노조율’ 모임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괴산 장연면 태성에 위치한 각연사 아래로 놀러왔는데 오라는 전화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거절을 했으면 좋으련만 나는 마음이 약해서 거절하지 못하고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오전 10시가 넘어서 뜨락 모임에서 나와 산길을 걸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차를 세우려고 손을 들어 손짓을 했다. 지금이야 길에서 손을 든다고 지나가는 차가 세워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는 지나가는 차들 중에 몇 대는 그냥 지나갔지만 그래도 다행스럽게 차 한 대가 중간에 멈춰 섰다. 나는 그 차를 타고 청천 버스터미널까지 갔다. 그리고 청천에서 괴산까지 간 다음에 다시 칠성이라는 면소재지에 도착을 했다. 도착을 했다고 피아노조율 모임에 전화를 했더니 10여분 지나서 마중을 나왔다. 각연사 아래로 들어가기 전에 소주를 몇 병 더 사가지고 들어갔다. 12시가 넘어서 도착을 했더니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서 소주와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나까지 여섯 명이 있었는데 나는 뜨락 모임에서 나올 때 소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아서 본격적으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다들 소주를 어느 정도 마셔서 벌써 취한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도 이제 마무리가 되어갔다. 왜냐하면 칠성에서 사온 소주가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제 청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혹시 몰라서 산을 내려가서 택시를 불러 함께 타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이 월요일이라 일을 해야 한다고 차를 가져가야 한단다. 에구, 어쩌랴 가자면 가야지. 그래서 나는 더블캡 트럭(이 트럭을 산지 한 달도 안 됐음)을 타고 안전벨트를 맸다. 한 15분쯤 달렸을까? 괴산에 거의 도착할 무렵 괴강 다리에서 커브를 잘못 돌려서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차가 뒤집어졌다. 다른 사람들은 앉은 자리에서 차 지붕으로 굴러 이마나 머리에 피가 약간 흘렀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기 때문에 뒤집어진 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때는 휴가철 일요일 오후라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가 많았다. 그리고 뒤에 오던 차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엎어진 차를 뒤집어 놓았다. 그리고 누가 경찰에 신고를 했는지 조금 있다가 경찰차가 와서 우리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물론 뒤집어진 차는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갔다. 경찰서에서 간단한 질문이 있었고 나를 비롯해서 각자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괴산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다시 경찰서로 갔다. ‘어제 다치지 않았냐’는 질문이 다였다. 아무튼 운전을 했던(원래 차 주인은 운전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운전을 했다.) 사람은 면허 정지와 벌금을 어느 정도 냈다고 들었다. 운전을 하지 않았던 나보고 운전을 했다고 하라고 했는데 나는 그 제의를 거절했다. 나는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안전벨트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지금은 차를 타면 무조건 안전벨트를 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