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증가속도 세계 1위인데…경기우려에 금리 못 올리는 한은

7월 들어 주담대 1조원 급증...가계대출 4개월째 상승세 "심각한 상황 아니다"라던 한은도 한 달 만에 "큰 우려"

2024-07-24     이광표 기자
이창용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통화 긴축 기조 속에서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고금리 여파로 한동안 잠잠하던 가계대출이 최근 부동산·대출 규제 완화 등에 힘입어 사상 최대치로 불어나면서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한 해 벌어들이는 국민소득으로도 가계빚을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국내외 각종 조사에서도 상위권을 석권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금융권에선 과도한 가계대출이 가계 건전성과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부동산·대출규제를 다시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은 1062조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증가 폭도 5조9000억원에 달해 1년9개월만에 가장 컸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올해 3월까지 감소했으나 4월 이후 증가세로 전환했다. 이달 들어서도 5대 은행에서만 가계대출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다시 3천억원 이상 늘어 금융권 전체로 4개월 연속 증가를 눈앞에 뒀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최근 다소 오르는 추세인데도 계속 가계대출이 불어나 통화 긴축 정책의 효과에 대한 의문 역시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0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678조5700억원으로 6월 말(678조2454억원)보다 3246억원 늘었다. 앞서 5월(677조6122억원)에 2021년 12월(+3649억원) 이후 1년 5개월 만에 처음 전월보다 증가(+1431억원)한 뒤 6월(+6332억원)과 이달까지 3개월째 증가세다. 세부적으로는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잔액 512조3397억원)이 20일까지 9389억원이나 불었다. 증가 폭도 이달 말까지 영업일이 약 열흘 정도 남은 상태에서 6월(+1조7245억원)보다는 작지만, 5월(+6935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다만 신용대출(잔액 108조5천221억원)이 지난달 말보다 4068억원 더 줄었을 뿐이다. 5대 은행의 이런 추세로 미뤄,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도 4월부터 7월까지 넉 달 연속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4∼5월의 경우 시장금리가 다소 떨어져 금리 부담 완화가 가계대출 증가세의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6월 이후에는 시장금리도 다시 오르는 추세다. 따라서 최근 가계대출 수요는 금리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가계빚 증가 추이는 우리나라가 가장 가파른 상황이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모니터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2.2%로, 34개국 중 유일하게 100%를 넘어서며 '1위'를 차지했다. 한 해 벌어들인 국민소득으로 가계빚을 갚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의미다. 홍콩(95.1%)이 2위, 태국(85.7%), 영국(81.6%), 미국(73.0%) 등의 순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은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 부진, 금융 불안 등을 고려하면 가계대출을 잡기 위해 당장 다음 달 기준금리를 쉽게 올릴 수도 없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달 19일 이창용 총재는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금방 가계대출이 늘거나 부동산(가격)이 오르거나 할 상황은 아니고, 좀 지켜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관련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달 13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는 "여러 금통위원이 가계부채 증가세에 큰 우려를 표했다. 만약 급격하게 늘어나면 금리나 거시건전성 등을 통해 대응할 것"이라며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했다. 다만 한은이 당장 가계대출 안정만을 명분으로 다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반기 경기 회복이 불투명한 데다, 자칫 금리 재인상이 신용 경색을 불러 제2의 레고랜드·새마을금고 사태나 급격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 자신도 "가계부채는 부동산 시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단기적으로 급격히 조정하려고 하면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PF 문제나 역전세난, 새마을금고 사태 등이 사례"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