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후흑(厚黑)'이 떠오르는 이상민 장관

2024-07-27     조현정 기자
조현정
예상대로 헌법재판소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탄핵 소추안을 기각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민 안전' 책임자인 장관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어서 159명의 목숨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없게 됐다. 대응에 미흡했고,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헌재 판결문을 세세하게 뜯어보지 않더라도 이 장관은 참사의 책임을 어떠한 방식으로도 지지 않는 상황이 됐다. 공직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관행적으로 사과와 사퇴를 동반한다. 이 장관은 참사 직후 여러 차례 사과는 했지만, 끝까지 자리에서 내려오지는 않았다. 법률적‧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명분으로 야당이 탄핵안을 헌재에 제출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물론 정략적인 계산도 깔렸겠지만, 그렇다고 이 장관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자리를 내놓고, 감옥에 갔다고 이미 발생한 참사가 되돌려질 수도 없다. 하지만 장관직에서 물러나 최소한 '책임을 지려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은 더 이상 이후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책임을 져 왔다. 이 때문에 이 장관이 헌재 판결 직후 장관직을 내려놓는 게 맞았다. 헌재에 의해 중대한 법적 책임을 면했으면 못다 한 도덕적‧정무적 책임을 사의로 표하고 물러나는 것이 국민이 바랐던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 장관은 헌재 판결 직후 수해 현장을 방문하며 업무에 복귀했다. 장관직을 끝까지 틀어쥐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집중 호우에 발생한 수해 역시 국민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은 또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가. 헌재 판결과 이 장관의 행보를 보면 결국 그 어느 곳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다. 재난에 있어 '국가의 부재'를 국가 스스로 인정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윤석열 정부와 이 장관을 보면서 '후흑(厚黑)'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줄임말로 '낯 두꺼운 뻔뻔함과 마음이 검은 음흉함'을 의미한다. 청나라 말기 학자 이종오는 <후흑학>에서 이 후흑이 난세를 극복하는 일종의 처세술이라고 했다. 역사의 승자들은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비굴해도 상관 없고, 욕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이 장관이 끝까지 장관직을 고수한 것을 이러한 후흑학적 측면에서 보면 이해가 된다. 여기에 업무에 복귀하자마자 내년 총선 출마설까지 나왔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당시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후흑'으로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윤 대통령이 최종 후보로 당선된 직후 홍 의원은 자신의 정치 플랫폼 '청년의 꿈'에 올라온 '뻔뻔하다는 말에 윤석열이 먼저 떠오른다'는 글에 "면후심흑(面厚心黑) 중국제왕학"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어쩌면 현 정부의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이 노회한 정치인은 꿰뚫어 봤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뻔뻔함으로 당장의 정치적 이익은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성공한 역사적 영웅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다만 역사가 주는 다른 교훈도 있다. 결국에는 '정도'와 '순리'가 옳다는 것이다. 길게 보면 돌고 돌아서 최종 승리를 거두는 길은 '정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