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행·시공·설계·감리 모두 문제인데”… 정신 못차린 정부

구조적 문제로 전 국민 불안… 그럼에도 "주거안정 문제 없어"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 강화… 건축도시안정청 설립 등 제안

2024-08-01     나광국 기자
원희룡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지난 2022년 1월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부터 올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까지 후진국형 사고가 잇따르면서 추가적인 안전사고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주거안전에는 큰 문제 없다는 정부의 안이한 사태 인식도 문제지만, 전문가들은 건설현장에서 지켜야할 원칙이 무너진 탓이라고 입을 모은다. 설계·시공·감리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건설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원인으로 사후 대응보다 사전 예방을 강화할 것을 주문하며 건설 전 단계를 관리·감독할 건축도시안전청 설립을 제안했다. 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토교통부는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LH 발주단지 91곳 중 지하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다. 부실은 설계·감리·시공 전 과정에서 발견됐다. 15곳 중 10곳은 설계 과정부터 지하주차장 기둥 주변 보강 철근이 누락됐고 5곳은 시공 과정에서 설계 도면대로 시공되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고 고의로 철근을 빼먹었다기보다는 설계·감리·시공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유사한 부실시공 사례가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입주민 불안은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는 이번에 문제가 된 LH 아파트는 지하주차장 상부에 건물이 없어 주거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 장관은 “아파트는 관련 법령에 따라 2∼4년 주기로 정밀안전점검을 받고 있어 모든 아파트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으로 확대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부실시공 사례 중에는 정밀안전점검을 받은 사례도 있다며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축사 소장은 “무량판구조가 철근 누락에 특히 취약할 순 있어도 철근이 설치만 된다면 안전한 공법”이라며 “정부가 설명한대로 정밀안전점검을 받으면 안전한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드는 게 지난 사례를 뒤져봐도 정밀안전점검을 했다고 사고가 나지 않은 경우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부실시공을 막기 위해서는 유명무실한 감리제도도 제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업장마다 원인은 다를 수 있지만 감리야말로 설계와 시공을 감시할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다. 최창식 한양대 건축공학부 교수는 “과거 삼풍백화점 때와 최근 일어난 붕괴 사고와 근본적인 원인은 별반 차이가 없다”며 “원칙대로 설계·감리·시공이 중요한데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수많은 건축법과 주택법 등이 만들어졌지만 건물은 사람이 개입하는 정도가 높기 때문에 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며 “결국 단계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건설 시스템의 종합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구조설계 과정에서 아웃소싱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지적했다. 최 교수는 “구조설계를 아웃소싱하는 과정까지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구조설계사가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며 “물론 이후 구조기술사가 충분한 검토를 거치면 되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권 카르텔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택을 짓는 문제는 집값이나 관련 정책, 지역의 이권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주택은 집값 상승 내지 하락기에 따라 공급량이 조절되는데 특정 지역에서 급하게 많이 지어야 할 때는 해당 지역에 투입되는 콘크리트 품질이 낮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서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유사한 붕괴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예방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된다. 최 교수는 “시공 중이나 유지관리 단계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관리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나 전문가들로 구성된 건축물 안전 강화 특별위원회, 건축도시안전청 설립을 검토해 전 단계를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