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국민이 정부 못 믿는 이유, 정부만 모른다
2024-08-02 안광석 기자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단지 가운데 철근이 누락된 15개 아파트 단지를 공개했다. 그 과정에서 국토교통부 장관과 LH 사장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전수조사 범위를 민간 발주 부문으로도 확대하겠다고도 다짐했다.
팩트만 열거하면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바로잡을 것은 잡겠다는 ‘쿨한’ 정부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이후 “못 믿겠다” “잠 못 자겠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반응들 일색이다. 이번에 논란이 된 것은 아파트 같은 거주시설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무량판 구조 건축시설이다. 그만큼 기우가 대부분일 수 있고 공포심이 너무 확산되는 것도 부동산 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 이제 정부가 바로잡겠다고 했으니 안심하고 발 뻗고 자고 집값 더 오르기 전에 빚내서라도 좋은 집 사자”고 말하는 이도 드물다는 것이다. 무량판 구조식 한 공사현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설계상으로는 천정을 지탱해야 하는 기둥에 철근의 일종인 전단보강근 100개가 들어가야 하는데 60~70개만 현장에 도착한다. 베테랑 기술자가 안전문제를 제기해도 오른 철근값과 장시간을 요하는 전단보강근 작업 특성상 공기 초과를 이유로 묵살된다. 그나마도 고도의 집중력과 기술을 요하는 철근 결속 작업을 건설의 건자도 모르는 하청업체나 외국인 근로자가 한다. 막상 베테랑들은 높은 인건비로 현장에 오래 붙잡아두기 어렵다. 공기가 빠듯하다는 이유로 비오는 날 몰래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한파가 온 날 양생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한다. 시행사나 감리는 이 모든 걸 목격하고도 뒷돈과 향응에 취해 어제까지 멀쩡하던 시력이 갑자기 나빠진다. 시공사도 공사비 아끼고 공기 맞춰 브랜드 신뢰도 쌓고 누이 좋고 매부 좋다. 형태는 각각 다르나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광주 화정 신축아파트가 그 과정 속에서 무너졌다. 부동산에 진심인 한국인들이다. 거기에 반 세기 이상 이같은 숱한 부실시공과 시행착오를 목도했다. 잘못된 것은 철근 및 시멘트 같은 공사자재 품질이나 라멘식·벽식·무량판식 같은 공법이 아니다. 공사에 관련된 사람들과 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쯤은 이제는 삼척동자도 안다. 수십년 묵은 문제 앞에서 정부는 지금만 넘기자는 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무량판 공법 지하주차장은 우리 정부 출범 전에 설계오류와 부실시공, 부실감리가 이뤄졌다. 우리 정부는 반카르텔 정부”라고 했다. 추가 전수조사 대상도 2017년에서 2021년까지 무량판 구조 공법으로 지어진 단지들이다. 물론 민간 부문으로 조사가 확대되면 일대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날짜와 대상이 묘하게 거슬린다. 반세기 이상 이어져 온 건설업계 구조적 문제들이 대통령 한 마디에 모든 건 전 정부 탓이 됐다. 국토부 장관 일갈에 애꿎은 무량판 구조 건물은 업계와 소비자들의 공적이 됐다. 국토부는 당연히 “Yes Sir”를 외치며 선택적 조사를 할 것이다. 총대는 LH가 매면서 조만간 최대한 요란하게 조직개혁안을 내 국민을 달랠 것이다. 국민 주거안정과 직결된 문제조차 정치 프레임화 해버리는 고급기술이다. 하긴 그러고 보니 총선이 얼마 안 남았다. 전 정부 시절에도 온갖 비리가 판치고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전 국민이 생존형 부동산 전문가라는 것을 모르나. 무엇 때문에 사과하고, 무엇을 알고 건설산업 이권 카르텔을 바로잡으라는 건지 필자를 포함한 국민들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