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안전 외면한 ‘철근 누락’ LH 발주 APT, 건설 카르텔 발본색원을
2024-08-07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매일일보 | 도심의 스카이라인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도록 건축물이 수직 고층화하고 지하 심층화되는 가운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의 철근 누락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지난 4월 29일 밤 11시 30분경 발생한 인천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건설 현장 지하 주차장 붕괴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철근 누락’과 ‘철근 빼먹기’가 안단테 아파트처럼 수직 기둥으로 넓은 슬래브를 받쳐주는 ‘무량판(無梁)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한 결과 15개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추가로 확인됐다.
무량판 구조는 보(Beam)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를 바로 얹는 건축 방식으로 보를 만들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유리하고 시공비, 공사 기간 절감의 장점이 있다. 보가 없어 높이가 높은 차량도 출입을 할 수 있어 2017년 이후 국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다수 도입됐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전국 민간아파트 가운데 무량판 구조를 채택한 단지는 모두 293개다. 105개 단지는 공사가 진행 중이고, 188개 단지는 입주를 마쳤다. 보 없이 기둥만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무량판 구조에서는 보강 철근(전단 보강근)이 반드시 설치가 필요한 데도 이를 누락시키거나 빼먹은 ‘순살 아파트’는 평균 6개 단지 중 1개 단지꼴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순살 아파트’ 15개 단지 중 10개 단지는 철근을 설계 단계부터 누락시켰고, 5개 단지는 시공 과정에서 빼먹었다. 공사 과정을 감시해야 할 감리는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 공사 중인 경기도의 한 단지는 보강 철근 154개 전부를, 입주를 마친 충북의 한 단지는 123개 중 101개를 빼먹었다. 이렇다 보니 정부는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아파트 293개 단지에 대한 안전 점검을 내달 말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건설업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로 부실과 안전 불감증이 만연해 자칫 큰 사고가 곳곳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 생각을 하면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LH 이외에 무량판 구조를 도입한 민간아파트 293개 단지를 추가 조사하면, 부실 시공된 아파트가 더 드러날 것은 분명하다. 부실 국내 아파트 현장을 보면 우리가 과연 해외 건설 매출 세계 5위가 맞나 싶다. 세계 최고층 빌딩과 세계 최장 교량을 짓는 건설 강국이 실력이 없어 아파트 하나 제대로 못 짓는 것은 결단코 아닐 것이다. 한국의 건설기술 경쟁력은 세계 6∼7위를 다투며, 시공 능력에서는 세계 최강이다. 163층의 높이 828m로 세계 최고층 빌딩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를 한국의 삼성물산이 건설했고, 튀르키예 북서부 다르다넬스해협을 가로지르는 길이 4.6 km의 세계 최장 현수교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기적의 다리’라 불리는 튀르키예 ‘차낙칼레1915교(1915 Çanakkale Köprüsü)’를 한국의 DL이앤씨와 SK에코플랜트가 건설했다. 문제는 안전과 품질보다는 비용 절감과 이윤 극대화를 앞세워 돈만 좇는 ‘물질 만능’과 이를 위해 적당주의를 용인하는 ‘부실 문화’가 발주·설계·시공·감리 등 모든 단계에 ‘부실 커넥션’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무량판 구조는 1995년 6월 29일 건물이 무너져 사망 502명, 부상 937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에도 사용된 공법이다. 설계상으로는 기둥과 슬래브 사이에 하중을 전달하는 ‘지판’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로는 지판 두께가 얇거나 아예 없어 무리한 구조 변경과 함께 백화점 붕괴의 원인이 됐다. 당시에는 지판을 빼먹었다면, 이번에는 철근을 빼먹은 것만 다를 뿐이다. 단가 후려치기와 재하청은 이보다 앞선 1994년 10월 21일 다리가 무너져 사망 32명, 부상 17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성수대교 붕괴에서 큰 교훈을 얻었고, 30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단가를 후려치고 하청에 재하청까지 남발하며 안전을 해치는 그릇된 구조가 우리 건설 현장에는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아파트 붕괴 참사는 1970년 4월 18일 아파트가 무너지며 사망 33명, 부상 40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마포 와우아파트 붕괴, 1993년 1월 7일 사망 28명, 부상 48명의 사상자를 낸 충북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등이 있었으며, 최근에는 2021년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 철거공사장 붕괴 참사(사망 9명, 부상 8명),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붕괴 사고(사망 6명, 부상 1명), 올해 인천 검단 안단테 아파트 사고까지 3년 연속으로 아파트가 무너지고 있다. 콘크리트(Concrete)는 1824년 영국의 벽돌 직공인 ‘조셉 아스프딘(Joeseph Aspdin)’이 석회석과 점토의 혼합물로 포틀랜드 시멘트(Portland Cement)를 발명했는데, 1867년 철망으로 보강한 콘크리트 화분을 만든 프랑스 정원사 ‘조제프 모니에(Joseph Monier)’에 의한 철근 콘크리트(Reinforced Concrete │ RC)의 발명은 바벨탑(Tower of Babe)에서 멈춰있던 인류의 높이를 향한 열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전까지 주요 건축재료는 벽돌과 콘크리트였다. 성경에 따르면 그동안 건축은 돌과 진흙이었지만 돌 대신 벽돌을 진흙 대신 역청을 썼다. 바벨탑도 벽돌에 역청을 발라 올렸다. 콘크리트는 응회암 분말, 석회, 모래를 물에 섞는 방식으로 고대부터 사용됐다. 로마 판테온(Pantheon) 신전의 주(主)자재도 콘크리트다. 문제는 높이인데 건물이 높아질수록 벽돌은 무한대로 커져야 했고, 콘크리트는 인장력에 약해 무너질 위험이 커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해법이 바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압축력에 강한 콘크리트와 인장력에 강한 철근이 서로 약점을 보완한 결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이용되는 건축구조로 자리 잡았고 ‘더 높게’라는 인류의 열망을 획기적으로 앞당겼다. 철은 콘크리트와 팽창계수가 동일하므로 연교차(年較差) 등으로 수축·팽창이 발생해도 구조물의 외부(콘크리트)와 내부(철근)의 편차가 나질 않아 급격한 균열이나 급속한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철근과 콘크리트의 열팽창계수가 우연히도 거의 동일’하다는 속성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산화에 약한 철을 알칼리성을 띤 콘크리트가 감싸줌으로써 철의 내구성도 높일 수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건물의 내구성과 장력(張力)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철근 콘크리트야말로 신이 건축가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건축에 있어서 가장 핵심 주(主)자재인 철근을 누락시키거나 빼먹었다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더구나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공공 아파트 단지에서 철근을 빼먹은 사례가 무더기로 드러나 충격은 더 크다. 아파트 기둥 철근 누락 조사 결과 최후 보루 역할을 해야 할 ‘건설 감리’는 이번에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설계 도면엔 기둥과 슬래브 연결 지점에 ‘전단 보강근’을 늘리게 돼 있는데 아예 다른 층에 배근한 것을 감리 업체가 잡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면대로 시공됐는지 확인하는 것조차도 놓쳤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등을 계기로 200억 원 이상 공공기관 발주 공사에 책임 감리제가 도입됐다. 선정된 민간 감리업체가 설계·원가·품질감리까지 책임지라는 것인데 무려 30년이 지나도록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파트 하나를 장만하려면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 든다. 그런데 철근을 누락시키거나 빼먹은 것을 비롯해 각종 부실 시공이 난무하다. 이는 자칫 생명까지 위협한다. 전국에 걸쳐 총 25만 가구나 되는 입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가운데 ‘순살 아파트’를 둘러싼 복잡한 이권과 비리를 근절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주민 안전이 최우선인 해결책이 졸속에 그친다면 주거 불안은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다. LH 91개 단지 조사가 석 달이나 걸린 것을 고려하면,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으로는 점검마저 졸속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어떠한 제도와 관행, 이권 카르텔도 더는 묵과할 수 없다. 이번 민간 아파트 전수조사 만큼은 시한에 쫓김이 없이 철저히 부실과 위험을 파헤치고, 대책도 꼼꼼히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전수조사를 면밀하고 철저히 실시할 것은 물론 보수·보강을 서둘러야 한다. 감리 업체가 공사 발주처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감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철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감리 업무 처리방식도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부실 공사라는 고질병이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건설 카르텔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여 법정 최고의 엄중한 단죄와 추상같이 준엄한 대가를 치르는 혹독한 선례를 만들어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해야만 한다. 부실 공사 방지를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 등 관련 5대 법안의 입법 조치도 서둘러 조속히 완료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