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망한 잼버리 사태…'적극 행정'을 준비하자

2024-08-08     조현정 기자
조현정
항우와 중원의 패권을 두고 다툰 유방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수하 무장인 한신과 번쾌, 장량의 활약 때문만은 아니다. 미관말직부터 시작해 한나라 창업을 뒷받침한 소하의 역할도 결정적이었다. 소하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군수물자 보급을 담당했고, 근거지인 관중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초한 전쟁 후 소하가 제일 공신으로 천거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정치의 후진성에도 불구하고 행정 각 부의 유능한 공무원의 힘으로 유지되는 국가였다. 공무원들의 무능을 비난하는 일도 많았지만,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우수한 인력으로 구성된 행정부는 정치적 혼란 상황에도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큰 힘으로 작용했고, 수 많은 장량과 소하가 묵묵히 나라 운영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시스템 마비는 실제 국민에게 위험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150여 명이 사망했지만, 다수 군중 모임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 어떠한 대책이 있었는지 아직 언론에 발표된 내용이 없다. 4만여 명의 해외 청소년이 모이는 잼버리 행사 역시 준비 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상반기 세수 결손도 40조원이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대책조차 없다. 공무원들은 그대로인데 잘 굴러가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적극 행정'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공무원이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창의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가 '적극 행정'이라지만, 지금 정부의 공무원들은 창의성과 적극성은 찾아볼 수 없다. 메르스 사태 당시 공무원에 대한 징계와 백신 구매 관련 처분은 공무원 사회에 충격을 가했고, 이후 박근혜 정부의 적폐 청산을 거쳐 현재에 이르는 과정에서 과연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 행정에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대한민국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민간 싱크탱크가 부족하다. 따라서 공무원과 행정부 산하 연구 기관 역할이 중요하고 각 산하 연구 기관에 연구 과제를 제시하는 역할은 대통령실과 행정부가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행정부의 적극 행정을 위한 노력은 대한민국의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다. 현 정부, 전 정부, 지자체를 비난하기에 앞서 왜 4만여 명이 열흘간 머무르는 장소에 충분한 화장실과 샤워실이 준비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늘을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했고, 수도 시설이 완비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단 1명도 이 상황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명의 고위 공무원이라도 화장실과 샤워실을 원활하게 사용하기 위해 몇 개의 시설이 필요한지 질문하고 준비를 지시했다면, 수도 시설 확충과 벌레 퇴치 계획을 질문하고 지시했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책임을 진 공무원을 징계하고 처벌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거기에만 몰입해서는 안된다. 의사 결정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로 준비가 소홀했던 것인지 점검을 하기 바란다. 유능한 공무원 집단을 보유하고도 시스템이 무너진 이유를 찾아야 한다. 민망하게도 잼버리 사태가 대한민국 행정 시스템의 현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염천 더위에 달궈진 물을 "온수네"라고 말하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이 없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